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가 북한에 대한 중유제공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예상됐던 결과이다. 이로 인해 제네바합의가 파기되고 북한이 핵 동결을 해제하려 들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할 경우 자신들에 대해선 강하게 나올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미국이 과연 어떻게 나올지 시험해 보려고 들 수도 있다.
북한은 차제에 어떤 국가도 한반도의 핵무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북한은 더 이상 핵개발 프로그램을 갖고 주변국가를 위협할 것이 아니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면 사찰을 수용하고,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해야만 한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에 대한 위협적인 언사와 행동을 중단하고 협상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핵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협상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원하고 있는 경수로와 자주권 인정, 불가침 조약 등은 제네바합의에 다 포함된 것으로 새로운 요구는 아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대치가 심화될 경우 한국이 양측 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케네스 퀴노네스(전 미 국무부 북한분석관)
▼"北核포기-지원 반드시 연계"▼
북한은 북-미관계 개선과 북-일수교를 위해 제네바합의와 핵사찰 수용이 불가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체제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핵’도 원했다.
이번 핵개발 계획의 증거를 잡힌 것은 북한으로서는 예상 밖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를 대미(對美) 카드로 사용하려고 했다. ‘북-미 불가침 협정’의 제안이 그것이다. 북한은 또 원칙적으로 핵사찰을 받아들이겠다는 ‘양보’와 미국에 대한 ‘협박’을 동시에 보이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제네바합의의 파기는 피해야 한다. 합의파기는 북한에 핵사찰 수용의 기회를 빼앗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북-미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만큼 일본과 한국의 역할은 크지만 대미관계에 대한 ‘보험’이라는 오해를 북한에 주어서는 안 된다.
일본은 당초 북-일 정상회담에서 제시했던 경제협력의 카드를 보여가면서 핵문제 해결 없이는 국교정상화는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한국도 우라늄 농축계획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위반이라고 말해야 한다.
북한이 대화의 장에서 완전히 퇴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핵개발 계획의 포기와 대북지원은 연계돼야 한다.
구라타 히데야(倉田秀也) 교린(杏林)대 교수
▼韓-日 美일방주의 제동 필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회의 대북 중유공급 중단 결정은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 유럽연합(EU)은 미국과 다른 시각을 갖고 있지만 결국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극심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1994년 제네바합의에 따라 건설해주기로 한 원자력발전소와 중유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북한은 평양을 방문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 대사 등에게 미국과 대화할 용의를 밝힌 바 있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에 퇴로도 주지 않은 채 강력한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마치 북한에 “어서 핵개발에 나서라”고 강요하고 있다는 인상마저 든다. 미국의 최종 의도는 ‘북한 현정권의 붕괴’가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앞으로 북한의 반응이 어떻든지 한국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 양국은 KEDO의 재정을 분담해왔고, 한반도 위기상황 때는 일차적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에 대해 제동을 걸 권리가 있다. 미국은 북-미간 대화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알렉산드르 보론초프(러 동방학연구소 상임연구원·전 북한 주재 외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