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측 재협상 불만▼
“도대체 저쪽 단일화추진단이 왜 사퇴했다고 봐?”
민주당 김원기(金元基) 후보단일화추진특위 위원장은 18일 저녁 국민통합21 후보단일화추진단의 전격 사퇴에 따른 긴급대책회의를 마친 뒤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측 추진단이 왜 사퇴를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측 인사들의 한결같은 얘기였다.
노 후보측의 상황 설명을 들어보면 정 후보측 추진단의 ‘사퇴의 변’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정 후보측은 “노 후보측이 재협상에 대해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노 후보측은 “재협상이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저쪽이 요구하는 대로 수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항변했다.
정 후보측 이철(李哲) 단일화추진단장을 접촉한 노 후보측 이해찬(李海瓚) 단일화추진단장은 “당초 설문내용과 오차범위, 표본 크기, 여론조사기관 선정, 조사시점 등 5가지에 대해 준비를 해갔는데 이철 단장은 조사기관과 조사시점만을 이야기했다”며 “그래서 변경이 가능하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고 말했다.
노 후보측은 정 후보측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의 언론 공개를 문제삼고 나온 것은 17일 각 언론사 여론조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저쪽이) 어떤 식으로든 여론조사 방식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재협상해야만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21측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지지자 배제 후 단일후보 선호도를 묻는 양측의 합의내용을 이회창-노무현, 이회창-정몽준 후보간 양자대결구도 조사방식으로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추진단의 전격사퇴가 이를 관철시키기 위한 ‘압박카드’라는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그러나 민주당측은 “설문내용은 우리가 아닌 정 후보측에서 문장을 정리한 것이고 그 문구도 공개된 바 없다”며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합21 내부의 합의내용 불만에 따른 책임론이 부각되면서 사퇴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철 단장이 ‘합의내용 유출시 합의 무효화를 관철시키지 못한 책임’을 거론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갖가지 추측 속에서 정몽준 후보의 ‘속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정몽준측 추진단 사퇴▼
국민통합21이 18일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합의안 백지화에 이어 후보단일화추진단의 일괄사퇴를 선언한 것은 상황 반전을 위한 초강수다.
통합21은 단일화 합의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몽준(鄭夢準) 후보가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게 밀리는 등 ‘이상기류’가 나타나자 이를 반전시키지 않고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통합21은 이날 보도된 각 언론사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 정 후보가 3% 안팎의 격차로 노 후보에게 추월당한 것은 단일화 합의 직후 ‘만만한 노 후보’를 단일후보로 뽑히게 하려는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지지자들의 ‘역(逆)선택’이 시작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더욱이 이날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의 구체적 방식이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단일후보를 결정지을 합동여론조사에서 이 같은 표의 왜곡현상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 정 후보에게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에 대한 재협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상황 분석에 따른 것이다.
통합21측은 이에 따라 여론조사 일자도 당초 합의된 25일에서 하루 정도 늦추고, 조사기관과 표본수도 재조정하는 등 전면적인 재조정 협의에 민주당이 즉각 나서지 않는 한 합의된 일정대로 시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통합21측은 또 민주당이 “여론조사 설문내용에 정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이회창 후보와의 경쟁력’ 항목을 넣으려는 것이 통합21이 재협상을 요구하는 진짜 의도”라고 말하고 있는 데 대해서도 발끈하고 있다. 통합21 오철호(吳哲鎬) 정치특보는 “이미 이 후보와의 경쟁력을 물을 수 있는 항목으로 합의돼 있는데 민주당이 되레 합의사실과도 다르게 노 후보에게 유리한 ‘단순지지도’ 조사 쪽으로 몰아가기 위해 흘리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협상 ‘압박’에도 불구하고 통합21이 단일화 합의 자체를 깨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후보측이 ‘판’을 깬다면 비난 여론에 따른 지지율 하락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사퇴를 선언한 단일화협상단 이철 단장도 “시대의 소명인 단일화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