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미국 정보당국은 파키스탄 수송기가 북한의 한 공항에서 탄도미사일 부품을 싣는 것을 포착했다. 워싱턴에 미묘한 타격을 준 것은 수송기가 미국의 C130 군용기였다는 점이다.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해 이 군용기를 알 카에다 테러조직을 추적하는 데만 사용하겠다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
미 정보당국이 추적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북한은 파키스탄이 인도의 전략적 지점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미사일 부품을 제공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북한에 다수의 가스원심분리기 디자인과 고농축우라늄 추출에 필요한 많은 장비를 제공했다.
정보당국은 7월 수송기 사건 이후엔 양국간 거래에 관한 증거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들은 당시 거래에서도 파키스탄 수송기가 북한에 핵 관련 물질을 운반했는지 단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아시아의 관리들은 파키스탄이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했는지, 또 무샤라프 대통령이 그같은 거래를 통제하고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북한의 군사교류는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결정적 전기를 맞은 것은 93년이었다. 영변의 핵시설을 놓고 미국과 북한이 대결하던 그해 12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다.
그는 북한측과의 회담에서 파키스탄은 핵확산금지를 준수한다면서도 국가들은 평화적 목적을 위해 핵기술을 획득하고 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파키스탄은 그때 북한에서 도입한 노동미사일 기술로 98년 4월 가우리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94년 제네바합의 이후 3년이 지나자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핵발전소가 결코 인도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했다. 97, 98년경 미 정보당국은 그가 핵무기 제조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그 해답의 일부를 찾았다.
파키스탄 핵무기의 아버지인 A Q 칸은 여러 차례 북한을 방문했으나 그의 방문은 비밀에 싸여 있었다. 이젠 몇 가지가 분명하다. 파키스탄은 북한에 지불할 돈이 없었고, 북한은 핵무기가 없으면 경제적으로 강력한 한국에 흡수되거나 미국의 군사력에 억눌릴 것을 두려워했다.
97년이나 98년 김 위원장과 북한 군부는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을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지만 상대적으로 숨기기 쉬운 방법이었다. 북한은 빌 클린턴 대통령 말기 미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면서도 핵을 개발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파키스탄과 북한의 거래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긴 했으나 증거가 드러난 것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이다. 한국 정보당국은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위해 이에 필요한 부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포착해 이를 미국에 전달했다. 미국의 압력으로 파키스탄의 칸 박사는 핵 프로그램에서 손을 뗐다.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는 핵전문가들은 햇볕정책을 이탈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북한의 비밀 핵개발에 관해 글을 쓰거나 추정하지 말도록 은근히 종용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여름 미 중앙정보국(CIA)은 북한의 농축우라늄 개발이 연구에서 생산으로 진행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각 정보기관에 이에 관한 증거를 분석하도록 지시했다. 이럴 경우 통상적으론 기관들의 해석이 엇갈리지만 이번엔 만장일치의 결론이 내려졌다. 북한의 핵개발이 상당히 진전돼 있으므로 이를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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