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어린 나이에 권 후보를 만나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워주는 큰산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다는 그는 “죄송합니다. 아직까지 콩깍지가 안 벗겨졌습니다”는 말로 권 후보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자택에서 만난 강씨는 기자가 사전에 전달한 질문서에 빽빽이 메모를 해두고 있었다. 지방에서 선거운동을 마치고 오는 비행기 안에서 직접 썼다고 했다. 인터뷰는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왜 남편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첫 질문을 던졌다. 강씨는 “우리가 처음 만난 상황부터 얘기를 해야 연결이 된다”며 입을 열었다.
“부잣집 딸(부친은 현 삼성생명인 동방생명의 창업주이다)로 아무 어려움 없이 자라면서 사회가 다 비슷한가 보다 하고 살았어요. 아버지를 산처럼 생각했는데 대학 1학년 때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빈자리가 큰 상태에서 후보를 만났지요. 외사촌오빠 친구였거든요. 자신도 외로운 상황에서 전쟁 고아들을 모아 야학을 하고 있었어요.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자리를 채워줄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덕분에 내가 모르던 세계와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요.”
대통령후보 부인 인터뷰를 멜로드라마로 만들 수는 없었다. 중간에 말을 끊었다.
-하지만 권 후보는 당시 친정부적인 서울신문 기자로 일하지 않았습니까. 유신시대 기사 쓸 때 괴로워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던데, 차라리 그만두라는 조언은 안 하셨나요.
“그때는 동아일보 외에는 모든 신문의 내용이 다 똑같았어요. 그 사람은 단순히 신문사 안에서 힘들어했다기보다 이 사회의 문제를 생각하고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고민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신문사를 그만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그 사람이 걷는 길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그 ‘길’이 노동운동이었다가 지금은 정치가 되었습니다.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일을 하지만 노동조합만으로는 이 사회를 바꿀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민에게 좀더 나은 삶을 영위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회가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냐고 묻자 강씨는 “기자분께서는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당황한 기자는 “답변 못하겠다”고 물러섰다.
“다시 말해서 문제가 너무 많죠. 여고생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 사고로) 죽임을 당했고 죽인 사람은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우리가 주권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나요. 또 기러기 아빠들을 보세요. 교육문제 등등 모든 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그래서 권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사회가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강씨는 “예. 권 후보는 가장 똑똑하고…”하면서 답변서를 읽다가 “이 부분은 기자님이 판에 박은 답을 싫어한다고 해서 넣었다”며 웃었다.
“가장 서민을 아끼고 사랑하며 가장 헌신적인 데다가 답답한 국민의 마음을 가장 속시원하게 해 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도 낮아져야 합니다. 서민의 고통을 알고 서민과 함께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지요.”
-그런데 강남의 ‘빌라트’에 살면서 어떻게 서민과 함께할 수 있나요.
“강남에는 서민 없습니까. 이 동네에도 반지하에 사는 서민 많습니다.”
그는 권 후보가 기자 시절 기자들을 위해 지어진 조합아파트를 산 덕분에 강남에 살게 됐다면서 “아이가 셋이고 어머니를 모시느라 평수가 좀더 넓은 연립주택으로 이사왔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는 2강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당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저는요, 우리 서민이 권 후보와 정책을 알기만 하면 당선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알릴 길이 별로 없어서 고민입니다. 민노당 정책이 실현가능성이 적다고 하는데 이 정책들을 선진국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펴는 정책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분들이 먹고사는 일에 바빠서 권 후보 같은 사람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지요.”
-자제분들이 유학까지 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대변한다고는 하지만 자식이 노동자가 되는 건 원치 않으시지요.
강씨는 “왜 노동자가 아니냐”며 눈을 크게 떴다.
급 받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당연히 미래의 노동자이지요. 블루칼라만 노동자인줄 오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변하는 당이 민노당입니다.”
-진보적 생각을 가진 남자들이 가정에서는 의외로 보수적인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권 후보도 그런가요.
“신혼 초 양복을 받아 걸려고 했더니 우리는 주종관계가 아니라 동반자이니 이럴 필요없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식사 후에 빈 그릇을 개수대에 옮겨줍니다. 설거지까지는 안 하지만요.”
대통령 부인이 되면 어떤 일을 할 계획이냐고 물었다.
“제가 호스피스 활동을 7년 해왔습니다. 복지문제에 관심이 많고요. 맞벌이하는 젊은 세대들 탁아문제가 해결 안 되면 아이를 안 낳고, 그렇게 되면 인구가 줄어들고 사회문제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탁아문제 여성문제가 시급하게 해결돼야 합니다.”
-복지부 여성부가 있는데 정책에도 관여할 생각인가 보죠.
“관심 분야에 대해 알아보고 전문가들과 함께 노력하겠다는 것이지, 대통령 부인이 정책을 입안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지요.”
강씨는 “민노당은 정책 수립도 민주적 체계적으로 하기 때문에 대표 부인이라고 해서 대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불가능하다”며 당원의 한 사람으로서 투표권 행사는 엄정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남편 이렇게 돕는다▼
“방송에서 당신 욕이나 실컷 해야겠다.” “하하하, 마음껏 욕하고 오시오.”
얼마 전 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의 부인 강지연(姜知延)씨가 KBS의 ‘아침마당’에 출연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면서, 배웅하는 남편과 나눈 대화다.
강씨는 매일 아침 한 번씩은 남편 입에서 웃음이 나오도록 노력한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내조 철칙인 ‘하루 한 번 보약 선물’이다.
매사에 활달하고 적극적인 강씨를 두고 민노당 당직자들은 “후보 부인이기에 앞서 우리 당의 가장 활동적인 당원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강씨가 고려대 행정학과 학생들의 초청을 받아 ‘진보정치를 꿈꾸며’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지켜본 당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설 솜씨로 보나 이론으로 보나 당 대표 감이다. 권 후보의 강력한 라이벌이 등장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설도 잘한다는 전언이다.
강씨는 2년 전 권 후보의 지구당이 있는 경남 창원에서 여성 당원들과 함께 민요패 ‘얼쑤’를 직접 창단, 공연을 다니는가 하면 지역구 봉사모임인 ‘따뜻한 손’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요즘에는 권 후보가 직접 가지 못하는 행사에 후보 부인 자격으로 대신 참석, 권 후보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대선 내조활동을 주로 한다.
지난 달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전태일 열사 추도식에 민노당 당직자들과 함께 참석한 일이나,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의 목요집회와 정신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나눔의 집(경기 광주시 소재)을 찾은 것도 그 일환이다.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관련 행사나 여성 장기파업장(보건의료노조원의 명동성당 농성 등) 방문 등도 강씨의 몫이다.
강씨는 또 당 인터넷 홈페이지를 자주 체크,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권 후보 관련 격려나 비판 글에 대해 꼼꼼히 답변하고 남편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한다.
강씨의 일정이나 활동 내용을 전체적으로 조정하는 사람은 김창희(金昌熙) 후보비서실장이다. 후보 일정과 겹치지 않고 보완관계를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다. 정경진(鄭敬眞) 수행비서가 강씨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고, 곽근영(郭根榮) 대변인실 언론부장은 인터뷰와 연설문 작성 등 언론관련 업무를 전담한다.
강지연씨 신상명세 | |
출생연월일 | 1943년 7월15일(양력) |
출생지 | 일본 오사카 |
본관 | 진주 |
학력 | 이화여중, 이화여고, 이화여대 교육학과 |
신체 | 키 164㎝, 혈액형 B형 |
종교 | 가톨릭(세례명 안젤라) |
취미 | 독서, 민요패 ‘얼쑤’ 활동 |
운동 | 등산, 헬스 |
존경하는 인물 | 김구, 박희원 신부(서울 방화3동 본당 주임신부) |
저서 | 없음 |
감명 깊게 읽은 책 | ‘태백산맥’(조정래), ‘물소리 바람소리’(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시집 |
좋아하는 연예인 | 안성기, 박상원 |
즐겨 입는 옷 색깔 | 분홍색, 갈색 |
가장 아끼는 물건 | 프랑스에서 직접 그린 유화 |
최근 감명 깊게 본 영화 | 권영길 후보와 함께 본 ‘빵과 장미’ |
건강관리법 | 걷기, 긍정적 사고 |
자신 있는 요리 | 된장찌개, 생선매운탕 |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