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북한 핵 문제 해결 방법 등 대북정책에 대해선 뚜렷한 시각차를 보였다.
노 후보는 핵 문제에 대해 “북한 핵개발 저지를 압력으로 할 것인가, 설득으로 할 것인가의 논쟁이 있는데 압력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끈질긴 대화와 설득으로 문제를 풀어야 하고,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만큼 한국이 그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핵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감하지만 문제는 항상 (북한을) 달래고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라며 “농축우라늄 핵은 한반도 문제인 만큼 북한에 강하게 포기를 요구하고, 경제적 수단도 연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 후보가 ‘화해협력→남북연합→민족통일’의 3단계 통일 방안을 설명하자, 이번엔 노 후보가 반격을 가했다.
노 후보는 “통일은 그런 형식적 절차로 되는 게 아니고, 평화가 축적돼야 하고 이를 위해선 신뢰 구축이 필요하다”며 “이 후보는 (대북) 상호주의와 검증을 내세우는데 그렇게 북한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으로는 신뢰를 쌓는 데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으로 상호주의와 검증을 무시한 결과, 북한에 5년간 줬는데도 (북은) 뒤에서 핵을 개발했다”며 “이 같은 결과가 ‘상호주의와 검증은 필요 없다’는 노 후보 말이 맞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한편 권영길(權永吉) 후보는 핵 문제에 대해 “북한과 미국 모두 제네바 합의를 어겼다”며 공동 책임론을 주장했고, “햇볕정책의 문제점은 남북 화해교류에만 머물고 군사적 긴장 완화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긴장 완화를 위해 남-북-미 평화협정이 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정치개혁-부패척결 공방▼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부정부패에 대한 주제를 놓고 한치의 양보 없이 공방을 벌였다.
이 후보가 “대통령 아들들이 부정부패를 저질렀을 때 노 후보는 무엇을 했느냐”며 “특검제도 반대하고 민주당 정풍(整風) 운동 때도 반대해 놓고 동교동계의 비호를 받아 장관과 대통령후보까지 된 사람이 어떻게 신장개업한 신임 사장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공격했다.
이에 노 후보는 “이 후보야말로 96년 총선 때 선대본부장을 하면서 안기부예산 1200억원을 끌어다 썼고 김영삼(金泳三) 정권 시절 아들 김현철씨 비리가 났을 때 아무 말도 못하지 않았느냐”고 되받았다.
노 후보가 이 후보에게 “한나라당처럼 이런저런 의혹을 많이 받고 있는 당이 어떻게 부패를 청산할 수 있느냐”고 따지자 이 후보는 “이 정권이 총풍, 세풍, 안풍, 병풍 등 온갖 의혹을 샅샅이 뒤졌지만 나온 게 뭐가 있느냐”고 반박했다.
정치개혁을 얘기할 때는 제도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기보다 서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데 시간을 썼다.
노 후보가 “3김 정치 청산하자고 하면서도 이 후보는 1인 정치와 제왕적 정치, 가신 정치, 지역의존 정치를 하는 것 아니냐”며 공격하자 이 후보는 “YS한테 가서 시계 보이면서 도와 달라고 했고, 호남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의 자산 부채 다 상속받겠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역공했다.
이 후보는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와의 공조에 대해 노 후보에게 “이념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정책공조를 하겠다는 것이냐”고 하자 노 후보는 “한나라당엔 전혀 정책이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느냐”고 받아쳤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두 당은 정치개혁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비난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답변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소속당의 과거 잘못은 일단 수긍한 뒤 “나는 다르다”는 식으로 과거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두 후보는 또 부패문제 등에 대한 상대후보의 공세에는 가시 돋친 반박으로 신경전을 벌였다.
이 후보는 줄곧 한나라당이 과거의 권위주의와 지역주의에서 탈피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과거 정치에 대해 “여러 면에서 사과할 게 있다. 자성하고 있다”면서도 경선에 의한 후보 선출, 당권-대권 분리 등 정당민주화를 내세우며 어제의 한나라당이 아님을 강조했다.
토론 도중 그는 간간이 “허허” 웃거나 “좀 부드럽게 합시다”라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검찰중립화 등과 관련한 질문에는 “정말” “확실히”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노 후보는 현 정권의 부패문제 등 ‘과오’를 인정하면서도 자신과의 연계에 대해서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는 “나도 민주당원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책임 없다고 말씀드릴 염치는 없다”면서도 자신이 집권하면 민주당 정권과 다를 것이란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노 후보는 후보 경선 당시의 공격적 이미지에서 탈피, 줄곧 설득조로 답변했고 때로는 “이 후보가 옳은 말을 했으니 그냥 넘어가겠다”며 유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후보가 현 정권의 부패문제에 대한 ‘여당후보 책임론’을 물고늘어지자 “김 대통령과 국사를 논한 적은 있지만 부정부패를 나누지는 않았다”고 날카롭게 반응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3김 정치와 다른 게 뭐냐”는 노 후보의 공격에 “(노 후보가) 후보가 된 뒤 김영삼(金泳三) 시계를 내보이며 부산시장 내달라고 한 것이야말로 구태정치”라고 역공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부담없는 權 '틈새전략'▼
권영길 후보는 이날 토론회에서 철저히 이, 노 두 후보간의 ‘틈새 시장’을 노렸다.
두 후보가 자신을 빼놓고 부패청산 문제 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자 권 후보는 “두 후보가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싸움만 하고 있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정책대안을 제시하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알리기’에 주력했다.
권 후보는 특검제 문제가 논란이 되자 “민주당은 야당일 때 사안이 있을 때마다 특검제하자고 주장하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공약으로 내걸더니 집권하니까 반대했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집권했을 때는 반대하더니 야당이 되니까 특검제를 하자고 한다”며 두 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권 후보는 사안에 따라서는 이 후보와 함께 노 후보를 공격하거나 노 후보와 함께 이 후보를 공격하며 논의의 흐름을 주도하는 ‘캐스팅 보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후보단일화 문제가 나오자 권 후보는 “노 후보가 ‘단일화는 절대 있을 수 없다’고 했는데 원칙과 소신이 바뀐 것이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이 후보와 함께 노 후보를 협공했다.
또 노 후보가 이 후보를 향해 “3김 정치와 다른 게 없다”고 공격하자 “한나라당은 비리국회 방탄국회를 17번이나 열었다. 이런 국회 되겠느냐. 국회의원 당선된 사람이 문제가 있으면 국민이 소환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그는 그러면서 “돈 안 드는 선거를 정착시키기 위한 선거공영제를 도입해야 한다” “당비를 내는 당원 비율에 따라 국고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기존의 주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부정부패로 축적한 재산 몰수 △비리정치인 공직선거 출마 영구제한법 등 ‘파격적인’ 정책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