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특파원이 본 대선<상>]˝한국현대사의 필연­˝

  • 입력 2002년 12월 12일 16시 35분


"21세기 최초의 한국 대통령선거에서 이회창, 노무현 후보가 다투는 것은 민주화를 이룬 한국현대사의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후보자 등록을 끝낸 한국의 대선 후보자들을 아사히신문에 이렇게 소개했다. 너무 멋을 부린 감도 없지 않으나,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대선후보 답지 않은 후보들이 격돌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자로서, 그리고 한국팬 중 한명인 일본인으로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다.

동시에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이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일부 특권계층의 전유물처럼 되어 버린 정치의 사물화(私物化)와 한국특유의 지역감정에서 과연 탈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런 변화의 조짐이라도 나타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선거는 사실상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맞대결로 되어 있다. 나는 지금까지 두 후보를 몇 번인가 취재를 했고, 직접 얘기를 들을 기회도 있었다. 두 후보의 인상과 발언내용을 돌이켜 보면 이 후보는 과거의 정경유착 같은 낡은 정치를 답습할 정치인도 아니고,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킬 강경주의자도 아니다. 노 후보도 급진적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현정권과 다른 정권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유권자들을 취재해 보면 기성정치에 대한 한국민의 불신이 일본에 지지않을 정도로 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시민들은 한결같이 정치를 '더럽다'고 힐난한다. 3일 TV합동토론에서 한나라당을 '부패원조당', 민주당을 '부패신장개업당'이라고 비난한 민노당 권영길후보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후련함을 느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요전에 깜짝 놀랄 일을 겪었다. 택시를 타고 어떤 정치가의 집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하자 운전기사는 "일본인이냐"고 물은뒤 이렇게 말을 이었다. "지금 가는 곳은 정치가나 고급관료가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운전기사들 사이에서는 '도둑촌'이라고 부른다. 다음부터 기사에게 '도둑촌으로 갑시다'라고 하면 금방 알아 듣는다." 정치불신의 심각함을 엿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정치의 신뢰회복가 급선무일 것 같다.

또 선거때마다 무겁고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있다. 이 나라의 지역감정이다. 여당도 야당도, 좌도 우도, 모두가 목소리를 합쳐 '지역대립은 안된다'고 말하고 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지역감정선거 결과가 나온다. 외국인에게는 신기하기까지 하다.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도는 ××당'식의 고착화가 정책논쟁을 가로막고, 한국의 대외적인 이미지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지역감정을 선동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 모두가 깊이 생각해 주었으면 한다.

예전에 한국에서 특파원을 지낸 선배들은 "지역감정은 한국의 명물이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남몰래 기대한다. '3김'으로 불리던 시대가 실질적으로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리더를 뽑는 대전환기를 맞아 어쩌면 유권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표성향을 보여주지는 않을까 하는.

이번 대선은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표가 끝난뒤 동서간에 확실한 표차이가 난다면 선배기자는 그것 보라며 웃을 것이고, 나의 엷은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반대로 경상도에서도, 전라도에서도 각 후보가 접전을 벌인 결과가 나온다면 그 자체가 뉴스가 되어 해외로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런 꿈을 꾸면서 오늘도 대선취재를 하기 위해 각지를 날아다니고 있다.

일본 아사히신문 서울특파원 하코다 데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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