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 후보를 ‘전쟁 불사론자’로 몰아붙이며 막판 선거전을 ‘전쟁이냐, 평화냐’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려 하자 서둘러 이를 차단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후보는 노 후보의 공세가 최근의 반미(反美) 분위기에 편승해 전쟁 위기의 본질을 호도, 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론을 떠넘기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가 이날 “현 정부는 북한에 현금을 갖다 주면서도 북한을 진정한 평화의 길로 끌어내지 못한 채 핵 위기를 불러왔다”며 책임론을 거론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주장은 ‘현금 지원 없이 평화 없다’는 노 후보의 입장과 분명한 각(角)이 서 있어 노 후보의 공세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게 이 후보측 판단이다.
이 후보는 이날 대북 현금지원→북한 핵 개발→주변 강국의 북한 핵 포기 압력 증가→한미 갈등 심화→국내 시장 불안으로 외국인 투자 위축 등의 가상 시나리오까지 제시하며 노 후보 주장의 허구성을 공박했다.
한나라당은 또 이 후보의 기자회견을 통해 노 후보의 주장이 북한측 논리와 맥이 닿아 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선거 막판 터진 북한 핵 문제로 인해 다수의 안정 희구 세력을 이 후보 쪽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 후보가 이날 노 후보를 겨냥해 “94년 핵 위기는 명백히 북한의 약속 위반과 벼랑끝 전술 때문에 발생했는데도 노 후보는 이를 두고 우리 정부의 책임이라고 한다”고 비판한 것이나, 서청원(徐淸源) 대표가 선거전략회의에서 “평양의 대변인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전쟁이냐, 평화냐’를 얘기할 수 있나”라고 목청을 높인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은 특히 전쟁 위기의 해소 방안에 대해 노 후보와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한 노 후보보다는 한미공조를 공고히 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 적임자는 이 후보뿐이란 논리다.
특히 노 후보가 북한의 핵 개발 포기에 대한 검증 절차 없이 현금 지원을 계속 강조할 경우 미국과의 관계 또한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한나라당은 주공격 포인트로 삼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94년 북한 핵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 국민들은 미국 클린턴 정부의 북한 공습 가능성을 심각하게 우려했던 것이 사실 아니냐”며 “다양한 인맥을 동원해 북-미 관계를 풀어낼 적임자는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라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