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후보단일화 이후 노-정 공조체제 속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 후보간에 접전양상으로 진행돼온 대선 구도가 막판 파란에 휩싸였다.
노 후보는 정대철(鄭大哲) 선대위원장, 이재정(李在禎) 유세본부장을 대동하고 밤 12시5분경 서울 평창동 정 대표의 자택을 방문해 문앞에서 기다렸으나 이인원(李寅源) 당무조정실장이 “자고 있다”며 면담거절 의사를 전하자 돌아갔다.
정 대표의 돌연한 입장변화는 이날 저녁 서울 종로 제일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공동 유세에서 정 대표 지지자들이 ‘정몽준 대통령’을 연호하자 노 후보가 “다음 대통령은 경쟁을 통해서 올라와야지 그냥 주는 게 아니다”며 제동을 거는 발언을 한 것이 발단이었다.
노 후보는 정 대표의 지지자들이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지지구호를 외치자 “국민통합21에서 나온 분 같은데 속도위반하지 말라”며 이같이 말했다.
노 후보는 이어 “내 주변에는 젊은 개혁적 정치인들이 많다. 내 멱살을 붙잡고 말릴 수 있는 ‘대찬 여자’ 추미애(秋美愛) 최고위원도 있고, 나와 함께 끝까지 국민경선을 치러준 정동영(鄭東泳) 의원도 있다”며 “이런 분들이 서로 경쟁해서 원칙있는 정치를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노 후보 발언 직후 서울 종로4가 한 음식점에서 국민통합21 주요당직자들을 소집해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노 후보가 단일화 정신을 훼손한 채 이미 대통령이 된 것을 전제로 전횡을 하는 듯한 졸렬함을 드러냈다”며 지지를 철회키로 의견을 모았다.
정 대표는 이후 동대문시장에서 가질 예정이던 노 후보와의 공동유세 일정을 취소한 채 귀가했다.
김행(金杏) 국민통합21 대변인은 회의 직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노 후보가 오늘 저녁 명동 공동유세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말하는 등 양당간에 합의된 정책공조정신에 어긋난 발언을 했다”며 “우리 정치의 가장 나쁜 병폐는 배신과 변절로 이런 현상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지를 철회하며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 이 후보는 “애초부터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필연적 결과다. 발표된 이유를 보니 정 대표가 개인을 생각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조윤선(趙允旋) 대변인이 전했다.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정 대표의 공조파기 선언 직후 “오해가 있으면 풀릴 것이다”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