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이회창 6년]大望 접으며 '눈물의 은퇴'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56분


지난 6년여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간 것일까.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20일 정계 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 도중 양 볼에 흐르는 눈물을 연방 훔쳐냈다. 회견문을 읽던 도중 감정이 북받쳐 두 차례나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6년 전 이 후보의 정계 입문은 화려했다. 그는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국무총리로서 YS와 맞붙어 94년 4월 사표를 던진 지 2년 만인 96년 1월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선대위의장으로 정치권에 첫발을 내디뎠다. YS가 ‘대쪽 총리’라는 개혁적 이미지를 산 것이었다. 그는 신한국당의 총선 압승을 이끌어 내면서 탄탄한 입지를 마련했다.

그러나 97년 1차 대권 고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대세론에 힘입어 당내 후보 경선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돌출한 두 아들의 병역면제 시비는 그에게 쓴잔을 안겨줬다.

대선 패배 후 한동안 변방에서 떠돌던 그는 98년 8월 한나라당 총재로 당 장악에 성공, 야당 지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세풍(稅風)을 비롯해 북풍(北風) 병풍(兵風) 등 여권의 ‘이회창 흠집내기’가 집요하게 이어졌다. 그는 정치적 생존을 위해 대규모 장외집회 등 정공법으로 맞서 소속 의원 36명이 빠져나가며 흔들리는 당 전열을 추슬렀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을 앞두고 그는 정치개혁의 승부수를 띄웠다. 김윤환(金潤煥) 이기택(李基澤) 신상우(辛相佑) 전 의원 등 당내 계파 수장들을 전격적으로 낙천시켰다. 그러고도 총선에서 승리해 명실상부한 야당 지도자로 거듭 태어났다.

올해 초 ‘빌라게이트’가 터지고 박근혜(朴槿惠) 의원이 탈당하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그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각종 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올해 들어서만 6·13 지방선거, 8·8 재·보궐선거에서 압승하며 ‘이회창 대세론’을 형성, 대선 가도에도 거칠 것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노무현(盧武鉉)-정몽준(鄭夢準) 후보단일화’ 돌풍과 세대간 대결 양상으로 번진 이번 대선에서 또다시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그는 새 정치의 기수로 칭송받으며 정계에 입문했지만 낡은 정치의 표본으로 몰려 홀연히 정치권을 떠나야 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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