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통일을 원하는 것은 통일 그 자체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통일을 통해서만 전체 한민족의 삶의 질을 한 단계 격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은 그 자체로 지상목표가 될 수는 없다.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통일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남북간 교류 협력의 활성화를 통해 상호 이질성을 완화하고 동질성을 회복해 나가는,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은 바로 이 과정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한번 만나서 사진 찍는 식의 형식적 교류협력은 이제 넘어설 단계가 됐다. 남북관계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몇 년 전만 해도 만남 자체가 의미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접촉이 진행되는 단계에 진입했다. 실질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하는 시점이다. 이 점에서 향후 남북관계의 중심 화두는 ‘경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한 상호 현실적인 이익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이익이 지속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면 남북의 교류협력사업은 진전되기 어렵고 남북관계 역시 발전할 수가 없다.
그동안 남북한간에 이뤄졌던 사회문화 분야 교류가 한두 번의 이벤트로 그친 것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남측은 민족적 관점에서 북한 방문 자체에 의미를 둔 반면 북측은 비싼 ‘입북료’ 수입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상황에서 지속적 교류가 이뤄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교류를 통해 상호 이익이 실현된다고 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대북 퍼주기 논란 같은 우리 내부의 갈등을 넘어서 국민적 공감대를 확보하고 대북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도 국민이 가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제적 성과가 필요하다.
진행 중인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연결, 개성공단 등도 경제적 검토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일단 착수하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된 측면이 강하다.
남북한간에 철도가 연결돼도 현재로선 이를 활용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실어나를 물자나 사람이 없다. 시베리아횡단철도와의 연결을 위해서는 북측 구간의 전면적 현대화가 선행되어야 하므로 최소한 10년은 소요된다. ‘철의 실크로드’는 적어도 정권이 두세 번은 바뀌어야 가능하다. 물론 철도 연결은 그 자체로 의미가 크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상징성만 갖고 교류협력을 추진하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달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국민의 정부에서 남북교역이 크게 성장했다고 하나 이는 쌀 지원과 같은 비거래성 교역이 증가했기 때문이지 실제 기업의 교역이 늘어났기 때문은 아니다(그림 참조). 오히려 기업의 거래성 교역은 7년 전보다 줄었다.
남북경제협력은 또한 장기적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 북한의 싼 임금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남북경협의 확대에 따라 북한 임금도 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사양산업의 북한 이전이라는 단기적인 시각에서 남북경협을 추진하는 것은 곤란하다. 이는 도산할 기업의 생명을 얼마 더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오늘 우리 경제를 이끌어 가는 산업이 앞으로도 남북경제 공동성장의 주력산업이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앞날을 내다보며 남북간의 ‘연계비교우위’를 실현해야 한다. 즉 남북 양자의 시각에서 비교우위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남북이 하나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사업을 선정해 추진해야 한다.
경제협력사업을 포함한 남북교류가 확대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우선 북한 핵개발, 이산가족 등 기본적인 군사적 인도적 문제가 시급히 해결돼야 한다.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 내부의 공감대 확보도 중요하다.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은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도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공감대 확산을 위해서는 대북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한다. 김대중 정부가 실제로는 별로 퍼준 것도 없으면서 퍼주기라는 비난을 받는 것은 중요한 대북정책 결정이 비공개리에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을 새 정부는 되새길 필요가 있다.
조동호
한국개발연구원
선임연구원·경제학
▼정상회담 이렇게▼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앞으로 대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도전’ 중의 하나가 남북정상회담일 것이다. 어쩌면 정상회담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 전기가 될지도 모른다. 노 당선자도 대선 중 회담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남북문제의 해결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리하게, 서둘러 추진하면 부정적 결과만 낳을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어떤 대통령이라도 욕심낼 만하다. 역사적 개인적 치적이기도 하려니와, 국내 정치적 부가가치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정치의 불안정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 문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면 될수록 대통령은 이 카드를 쓰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노 당선자와 새 정부는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국내 정치적 고려를 철저히 배제함으로써 정상회담을 탈(脫)정치화해야 한다. 사실 이제는 남북정상회담 자체만으로는 뭔가 성과를 얻기 힘든 상황이 됐다. 실질적 결과가 없는 1회성 회담은 심각한 후유증만 낳을 수 있다.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누차 애걸하듯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요청했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도 정부의 그 같은 태도에 비판적이었다.
노 당선자나 새 정부는 당당해야 한다. 국가 이익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서 대북문제를 차분하게 풀어가다 보면 상호 수사(修辭)와 정치적 의도가 배제된 내용 있는 남북 정상회담은 임기 중에 반드시 이뤄지게 돼 있다.
그런 정상회담이 되어야만 김대중 정부가 감히 꺼내지 못했던 북한의 인권이나 납북자, 탈북자 문제와 같은 현안까지도 자신있게 회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앞으로 대북 지원을 이런 현안들과 신축적으로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북한 동포들의 비극적 삶을 개선하는 문제를 언제까지 덮어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북한과의 수교 교섭과정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됐던 일본인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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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인택 고려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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