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사면 원칙을 세우자”…‘봐주기’ 막을 심사委구성 필요

  • 입력 2003년 1월 2일 18시 53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지난해 말 단행한 특별사면이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봐주기 사면’이었다는 비판과 함께 차제에 법 개정을 통해 사면 절차의 기준과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특히 특별사면은 사법부가 판결한 형의 효력을 대통령이 소멸시키는 것으로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특별한’ 예외인데도 너무 자주 시행돼 ‘사면권이 사법권을 유린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사면권 남용 비판=박찬운(朴燦運) 변호사는 “국민이 공감하지 못하는 사면이 이뤄져 국민이 ‘유전무죄(有錢無罪)’ 등의 자탄에 빠지면서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사법 정의와 법적 안정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의 한 판사는 “사면이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해지고 있어 국민에게 허탈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며 “법원과 검찰도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임영화(林榮和) 변호사는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법적 잣대를 무시한 채 거물 비리사범을 수시로 사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마치 전리품처럼 사면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고 꼬집었다.

대검의 한 검사는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처벌받아도 곧 사면을 받으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대통령의 임기말 사면권 남발은 정권의 반부패 의지가 얼마나 나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폐해 및 대안=문제의 핵심은 사면 대상 선정이 자의적으로 이뤄지면서 명분도 없고 형평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 사면에서는 대우그룹 분식회계 및 사기 대출 사건에 관련된 계열사 대표 등 9명이 형선고 실효와 함께 복권됐다. 하지만 이들과 같은 혐의로 기소됐던 계열사 실무자 일부는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 변호사는 “‘몸통’ 격인 회사 대표와 고위 간부들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지시에 따른 ‘깃털’ 격의 실무자가 빠진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치권과 학계, 법조계에서는 사면 심사위원회 설립 등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2일 “판결 확정일 기준으로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하기 전에는 사면할 수 없도록 하는 장치나 대통령, 국회, 대법원장이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면 심사위원회를 두는 방안을 검토해 사면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위원회나 형기 기준이 만들어질 경우 예외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사면권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외국의 사면권 제한=독일연방헌법재판소는 ‘사면권의 행사는 법률의 획일성, 경직성, 또는 수사과정에서의 오류를 시정하고 사후에 발생한 일반적·개별적인 사정변경을 고려해야 할 경우에만 허용된다. 아울러 사면권은 법적 평등이나 법적 안정성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행사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 핀란드의 헌법에는 ‘대통령이 특별한 경우 대법원의 자문을 구해 사면을 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덴마크의 경우 장관에 대한 사면이 금지돼 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하원에 소추된 사람은 사면 대상이 될 수 없다.

한편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01년 퇴임 직전,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됐다가 해외로 도주한 마크 리치를 불법 정치자금 제공의 대가로 사면해 준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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