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1972년 외교문서 공개]美, '7·4성명'후 철군-北인정 검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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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朴正熙) 정권이 72년 10월 유신(維新) 쿠데타를 전후해 미국내 비판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미 정계와 학계, 언론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외교 공작’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외교통상부가 ‘외교문서 보존 및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15일 공개한 72년 외교문서(798권, 8만2000여쪽)는 당시의 상황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박 정권은 특히 미국내 저명한 컬럼니스트로 하여금 주요 일간지에 한국 정부나 유신을 옹호하는 기고문을 싣도록 하기 위해 특별예산까지 조성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30년이 경과해 공개된 당시 외교문서에는 또 72년 7·4 남북 공동성명 발표 이후 미국이 주한미군 철수, 북한 체제 인정 등 대북관계 개선 조짐을 보이자 이를 막기 위해 ‘외교 총력전’을 펼친 내막도 포함돼 있다.

▽10월 유신을 홍보하라=유신 쿠데타 직후 작성된 ‘10·17 특별성명과 관련한 대미특별 활동 계획’은 한마디로 유신홍보계획서.

계획서는 ‘이번 조치(유신 선포)에 대한 미 정계와 언론계의 비판적 언동의 미연 방지 및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특수성을 강조 설득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 뒤 ‘(사태를 방치할 경우) 국군 현대화 계획 차질과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 가능성이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은 또 유신 하루 전인 72년 10월 16일 주미대사에게 로저스 미 국무장관과 알렉시스 존슨 국무차관, 마셜 그린 국무부 차관보 등을 만나 유신 선언 및 계엄령 선포 조치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당시 미 국무부 고위층은 ‘반감’을 표명했고 특히 유신 내용 중 강대국에 대한 부정적 언급에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정권은 또 재외 공관에 내린 ‘세부지침’에서 로비스트를 동원한 언론 홍보활동과 공관장의 현지 기자회견을 적극 활용토록 지시하고 있다.

박 정권은 특히 유신 홍보를 위한 미국 현지 언론공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당시 미국내 저명한 칼럼니스트를 활용해 73년 3월까지 매달 한 차례씩 6차례에 걸쳐 한국 정부를 옹호하는 기고문을 싣도록 하기 위해 총 3만달러의 특별예산을 편성토록 한 것. 또 이들이 수시로 미국 주요 일간지의 독자투고(letter to the editior) 난에 유신을 홍보하는 글을 투고토록 하는 한편 비판적인 기사가 실릴 경우 즉각 조치할 수 있도록 사전에 (반론을 펼 수 있는) 적절한 인사를 섭외해 놓도록 했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당시 외무부는 워싱턴 포스트지의 도쿄특파원을 박 대통령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는 한편 미국 신문에 ‘한국 민주주의가 강간당했다’는 기고문이 실리자 국내 모 교수를 통해 반박하는 글을 투고토록 하기도 했다.

당시 계획에는 미국 선거가 끝나는 72년 11월 말경 대미 설득 사절을 파견하는 안도 포함됐다.

▽미국의 대북관계 개선 움직임을 차단하라=박 정권은 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미국의 대북 관계 개선 움직임을 깊이 우려하고 이를 차단하기 위해 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펼친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문서 중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대미 외교의 문제점과 대책’(3급 비밀)에 따르면 미국은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북한체제 인정, 주한미군 철수를 고려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는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미국은 지속적인 대한 군사원조를 다짐했으나 로저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포함, 모든 나라와 관계 개선을 원한다’고 언급했고 북한을 ‘DPRK’로 호칭하는 등 대북 관계 개선 의도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특히 “미국은 북한과 월맹(베트남), 쿠바에 대한 미국 시민 여행 제한을 73년 3월 해제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반도 긴장 완화를 도모함으로써 ‘닉슨독트린’의 실천을 용이케 하고 대북 관계 개선을 기정 정책 방향으로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배경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미국이 ‘두 개의 한국’ 정책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해 결국 향후 남북 대화 추진과정에서 남한의 입장을 곤경에 빠뜨릴 우려가 있다”면서 “특히 공동성명 중 ‘외세 간섭 없는 자주 통일노력…’ 구절은 미 의회내 비둘기파 인사들에게 주한미군 추가 철수 및 대한 군사원조 삭감 주장의 구실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10·17 특별성명(72년 10월 유신) 대미 특별활동 계획 문서 주요 부분▼

▽10·17 특별성명(72년 10월 유신) 대미(對美) 특별활동 계획 문서 주요 부분

1. 특별 대미활동 목적

가. 이번 조치의 동기=남북대화 촉진상 동 조치의 불가피성 등을 미 정부 요로, 의회, 정계 및 일반 국민들에게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설득하고 이해 촉구

나. 이번 조치에 대한 미 정계, 언론계들의 비판적 언동의 미연 방지 및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게 된 특수성을 강조, 설득

다. 미 정부는 미 의회 Fy73 심의과정에서 군원의 삭감을 예상하고 있음

라. 국군 현대화 계획에 차질이 있을 것이 우려됨

마. 주한미군의 조기 철수 가능성이 있음

2.특별 대미활동 계획

가. 대정부 활동

(1)주미 대사와 정부 요로 접촉을 통한 반응 타진과 설득 계속(로저스 국무장관, 아렉시스 존슨 차관, 마셜 그린 차관보)

(2)정무 참사관의 실무급 접촉

나. 대외비 활동

(1)반응 타진과 사정 파악(주미 대사의 방한 의원, 친한파 의원 접촉을 통한)

(2)주미 대사의 미 의회내 비판적인 여야 간부 및 의원, 세출위내 중진급 의원 접촉

(3)주미 대사관의 의회 유력 전문위원급 인사 접촉

다. 대언론계 활동

(1)저명한 칼럼니스트 활용, 유리한 언론 조성, 1973년 3월까지 평균 월 1회 칼럼을 게재함(특별예산 5000달러×6=3만달러)

(2)Letter to the Editor난을 이용, 각 주요 일간지에 수시 투고

―워싱턴, 뉴욕,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여론 조성에 중추를 이루는 도시의 주요 일간지를 통한 집중적인 홍보활동 전개. 단 각종 비판적인 기사가 있을 경우 즉각 조치토록 사전에 적절한 인사 선택함

(3)친한적인 학계 정계 인사를 동원, 학술잡지 또는 대중잡지 등에 기고 게재

라. 명예영사를 통한 활동

명예영사 소재지의 영향력있는 각계 인사와 접촉(주미 대사가 활동 통제하여 주별, 상원의원별로 배당토록 함)

3.대미 설득사절 파견

(1)파견 시기

미 선거 종료후 11월 말경 사정을 보아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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