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北지원설' 진상규명 재점화

  • 입력 2003년 1월 16일 00시 55분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가 15일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설’에 대해 나름대로의 처리 방향을 언급한 것이 후폭풍을 몰고 오고 있다.

문 내정자의 발언 요지는 우선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 문제에 개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만일 통치행위 차원에서 한 일이었다면 국익 등을 고려해 덮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의가 무엇이든 그의 발언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이 문제가 갖고 있는 폭발력 때문이다.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설’은 지난해 정기국회 기간 중 한나라당이 주장한 이후 대선정국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현 정권이 최대 업적으로 내세우는 남북화해 등 햇볕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까지 야기했다.

더욱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뜻을 밝히고 있기 때문에 사정이 어떠하든 간에 ‘4000억원’에 현 정권이 개입한 정황이 있다면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 데에도 엄청난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북의 핵개발 의혹 등으로 인해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초긴장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문 내정자의 이날 발언이 얼마나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나아가 노 당선자의 의중이 담겨 있는지 하는 것이 관심을 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문 내정자가 “4000억원 대북 지원설 등 의혹은 이번 정부에서 다 털고 가야 한다. 그래야 새 정부 부담이 없다”고 한 부분은 듣기에 따라서는 현 정부에 대한 주문이자, 이 사안을 앞으로 차기 정부가 어떻게 해결할지를 시사해 주고 있다.

사실 이 문제를 포함해 공적자금 문제 등 한나라당이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사안들은 현 정권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고 가는 것이 새 정부의 부담을 더는 일이라는 게 민주당 신주류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문 내정자의 이날 발언은 이런 기류를 대변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노 당선자측이 한나라당의 국정조사 요구를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노 당선자도 대선기간 중 이 문제에 대해 정경유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검찰이 자금추적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현재 이 문제를 포함한 현 정권의 ‘7대 의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법안 및 인사청문회법안을 연계하겠다며 압박하고 있어 노 당선자측이 대야 관계를 풀기 위한 수단으로 ‘4000억원’ 문제 등을 파헤치는 데 동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문 내정자의 이날 발언도 한나라당의 ‘연계 전략’을 분석하던 끝에 나온 말이었다.

그러나 일단 문 내정자는 결코 어떤 의도를 갖고 한 말이 아니라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전혀 사실관계를 모를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원칙론만을 얘기했을 뿐이다”며 확대 해석을 극구 경계했다.

발언 파문이 확대되자 그는 “김 대통령이 안 했을 것이란 말을 전제로 깔았는데다 통치행위가 사법판단 대상이 아니라는 말은 법학통론에도 나오는 말이라고 하는 등 상식 차원에서 한 말이다”고 해명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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