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해양수산부장관 시절 각별히 신임했던 박봉흠(朴奉欽) 기획예산처 차관은 선배 경제관료인 강경식(姜慶植) 전 부총리가 부산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난 직후 후배들에게 말한 ‘뗏목론’을 소개했다. 그는 21일 기자와 만나 “강 전 부총리가 공무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후배들에게 한 말”이라면서 ”많은 짐을 싣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길을 가야지 뗏목까지 걸머지고 가선 안 된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강 전 부총리의 ‘뗏목론’은 이후 공직사회에서 두고두고 회자(膾炙)됐다고 한다.
박 차관은 예산전문가로서 ‘뗏목론’에 근거해 “대선 공약 이행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인수위측에 “인수위가 여러 가지 정책을 검토하는 것은 좋지만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예산 집행의 우선 순위는 반드시 매겨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에 앞서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도 지난해 12월 말 노 당선자가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두고 가야 한다”는 고언(苦言)을 한 적이 있다. 20, 30대 젊은 층의 지지와 노사모의 노력으로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막상 국정을 운영할 때는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노 당선자가 앞으로 386세대 참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비슷한 취지의 말이 나오고 있다.
반면 노 당선자의 젊은 참모들은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해 다른 의미의 ‘뗏목론’을 펴고 있다. 민주당이 갖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버린다는 각오를 해야만 여소야대(與小野大) 상황에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노 당선자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다양한 ‘뗏목론’은 앞으로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노무현 정부의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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