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의 관심은 임 특보가 과연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핵 포기’ 결심을 받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대북특사 의미=임 특보의 방북은 북핵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로 이관하려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는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의 아시아 순방을 통해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를 조기에 개최해 유엔 안보리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따라서 별다른 상황변화가 없다면 다음 주말에는 IAEA가 북핵 문제를 유엔 안보리로 상정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임 특보의 방북 결과에 따라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입버릇처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하거나 IAEA 핵안전조치협정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등의 상황변화가 없다면 북핵 문제는 유엔 안보리로 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해왔다. 별로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북핵 문제는 결국 안보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체념조의 언급’이었지만, 임 특보가 김 국방위원장으로부터 NPT 복귀 약속을 받아낸다면 상황이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북한에서 무엇을 하나=임 특보는 지난해 4월에 이어 이번에도 김 국방위원장과 면담을 가질 것이라는 게 정부측 기대다. 그래야 임 특보의 방북이 핵문제 해결의 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실무자들이 김 국방위원장에게 현재 진행중인 ‘핵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보고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라, 현재의 위기를 직접 설명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측이 갖고 가는 보따리의 내용도 관심거리다. 임 특보와 새 정부 대북 정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이종석(李鍾奭) 대통령직인수위원은 북한이 핵위기를 해결하고 나설 경우, 우리 정부가 미국을 설득해 북한에 줄 수 있는 ‘선물 보따리’를 펼쳐놓고 협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밝힌 ‘과감한 조치’의 구체적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와 김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개최 문제도 주목거리다. 노 당선자는 24일 미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을 제안하겠다”고 밝혀놓은 상황이다. 비록 김일성(金日成) 북한 주석의 사망으로 무산됐지만, 94년 핵위기 때도 김영삼(金泳三) 당시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합의를 통한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북한은 일차적으로는 북핵 문제가 북한과 미국의 양자문제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9차 장관급회담에서도 북한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 특사 방북의 성과에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오히려 임 특보에게 ‘미국을 설득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도록 설득하라’는 입장을 고수할 경우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4월에도 임 특보에게 ‘민족공조냐 외세공조냐’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다. 특사 방북이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나마 잘 진행되던 남북관계마저 후퇴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분위기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도 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이종석위원 왜 함께 가나▼
임동원 특사와 함께 북한을 방문할 대통령직인수위 통일외교안보분과 이종석 위원은 24일 자신의 동행에 대해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현 정부의 노력에 대한 노무현 당선자의 성원”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임기가 한 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아 이번 특사 방북 과정에서 그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위원은 이에 대해 “현 정부가 노 당선자에게 ‘인수위측 인사도 동행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고, 노 당선자가 그것을 받아들인 것뿐이다”며 “인수위 차원에서 별도의 (대북 협상) 보따리 같은 것이 있겠느냐”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현 정부나 북한측 모두 어떤 타협안을 찾아내더라도 곧 정권을 인수할 노 당선자의 동의가 없다면 힘을 받기 어렵다. 서울 외교가에서 이 위원의 동행은 북한측의 직·간접적 요구에 따른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당선자측 한 핵심관계자는 “노 당선자는 그동안 현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를 보완적으로 계승 발전한다고 밝혀왔다”며 “이 위원의 동행이 새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북한 핵 문제에 대한 기본 인식을 북측에 직접 전달하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행 방북의 결과가 나쁘면 노 당선자도 부담을 안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작년 특사방북과 다른점▼
임동원 특보는 지난해 4월에도 특사 자격으로 방북했지만 이번 방북의 성격과 주변 국제정세는 전혀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지난해에는 북한의 핵사찰 수용시한, 미사일 발사유예기간 만료가 다가오면서 제기됐던 이른바 ‘2003년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위기가 현실화된 상황이라는 것이다.
당시 임 특보는 5시간에 걸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위기 관리’ 방안을 협의했다. 특히 김 국방위원장으로부터 북-미 대화를 재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북-미 뉴욕채널이 가동됐다.
또 지난해는 남북간 소강상태를 탈피하기 위한 돌파구였지만, 정작 이번에는 남북관계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기에 특사 파견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도 다르다. 특히 적십자실무접촉과 9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열리고 있는 중에 합의된 특사방북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방북 시기도 당시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임기가 2년이나 남아있던 시점이었지만 이번에는 정권 교체기다. 자칫 특사의 권한에 ‘힘’이 실리지 않을 수도 있다.
특사단에 대통령직인수위원인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을 포함시킨 것은 그런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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