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2235억 北송금, '수사→國調→특검' 다단계 압박

  • 입력 2003년 2월 2일 18시 44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왼쪽)이 2일 이규택 원내총무와 함께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진상 규명을 위한 당의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왼쪽)이 2일 이규택 원내총무와 함께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현대상선의 대북송금 진상 규명을 위한 당의 대책을 설명하고 있다. -서영수기자
▼사건 실체규명 장기전돌입

한나라당이 2일 현대상선 대북송금 사건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의 제안을 일축하고 즉각적인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사건의 ‘몸통’에 다가서기 위한 다단계 압박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먼저 문 실장내정자가 “통치행위였다면 덮어야 한다”고 운을 떼고, 설 연휴 직전에 전격적인 감사원 발표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사법심사 불가’ 발언이 나온 배경에는 사건을 정치적으로 덮고 넘어가려는 신·구 정권간 교감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대북 비밀지원 의혹은 검찰수사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며 국회 국정조사 강행을 주장하다 이날 방침을 바꿔 ‘선(先) 검찰조사’를 강도높게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연일 김 대통령의 ‘사법심사 불가’ 발언에 대해 ‘제왕적 통치관의 산물’이라고 공격하며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과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 및 김보현(金保鉉) 국가정보원 3차장의 출국금지 및 수사를 촉구하고 있는 것도 ‘선 검찰조사’를 강조하겠다는 방침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나라당은 신·구 정권간의 미묘한 이해관계 때문에 검찰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이 이날 “검찰이 수사에 착수만 해놓고 어물어물하거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지 못할 때는 특검제나 국정조사가 불가피하다”고 쐐기를 박은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또 국회 국정조사의 경우 증인채택 등을 둘러싼 여야간의 대립으로 핵심 의혹 관련자들에게 면죄부만 주는 결과에 그칠 수도 있다고 보고, 검찰수사를 지켜본 뒤 특검제 도입을 조기 관철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국정조사에 민주당측이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국회 통과 즉시 발동이 가능한 특검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특검법안을 마련해 제출만 남겨둔 상태”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이 같은 다단계 전략과 병행해 정형근(鄭亨根) 홍준표(洪準杓) 윤여준(尹汝雋) 엄호성(嚴虎聲) 의원 등 당내 ‘전문가’들을 총동원, 해외정보 수집을 포함한 총력지원 태세를 갖추는 한편 자민련과의 ‘원내공조’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처음엔 남북교류협력법과 외환거래법 같은 ‘실정법 위반’ 추궁에서 출발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번 문제를 ‘퍼주기식’ 대북정책 중단과 원칙있는 남북관계 확립의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 당직자들의 설명이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여러해법 중구난방

현대상선의 2억달러 대북 송금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입장정리를 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사안의 민감성 때문이다.

우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 자신이 이 문제에 대해 일절 함구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간사단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해 “임채정(林采正) 인수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인수위 입장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보고해 달라”고 주문하는 데 그쳤을 뿐 구체적인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가 ‘정치적 해결’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노 당선자의 공식적인 태도는 여전히 ‘진상파악 후 입장정리’란 원론적인 입장이다.

인수위측도 “우리가 깊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면서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김병준(金秉準) 정무분과 간사는 “인수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고 대부분 인수위원들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아예 언급조차 피하고 있다.

민주당도 ‘중구난방’식의 산발적 의견만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국민에게 진상을 밝혀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국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애매한 언급을 했다.

정세균(丁世均) 정책위의장은 “당에서는 ‘털 것은 털고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지만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2억달러가 개인 비리에 쓰였다면 대통령을 백담사가 아닌 ‘천담사’에라도 보내야겠지만 개인 착복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것으로 드러난 이상 막말로 법정에 세울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현실론’을 폈다.

이강래(李康來) 의원은 한나라당과의 정치적 차원의 물밑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개혁파 일각에선 “우선 검찰 수사로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한다”(조순형·趙舜衡 의원), “명백한 위법사실이 드러나면 관련자 사법처리까지 해야 한다”(신기남·辛基南 의원)는 강경론도 적지 않아 당내 합의 도출에도 진통이 예상된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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