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감사원은 실무자 3명에 대해서만 문책을 요구했고 이근영(李瑾榮) 당시 총재와 박상배(朴相培) 당시 이사에 대해서는 상급기관인 재정경제부에 규정위반 사실 등을 통보, 인사자료로 활용토록 하는 데 그쳤다. 감사원이 그동안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정부가 지분을 가진 금융기관을 감사한 결과 잘못이 드러나면 기관장 문책 등 강도 높은 조치를 취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산은 직원들 사이에서 “상사의 지시에 따른 실무자들만 다치게 됐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감사원이 밝힌 산업은행의 잘못=감사원은 산업은행이 2000년 6월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준 것이 산은법 시행령의 ‘동일인 여신한도’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시 현대 계열사에 대한 산업은행의 여신은 법정한도를 초과한 상태여서 여신을 줄여야 하는데도 추가로 4000억원을 빌려줬다. 이는 총재해임권고 사항에 해당할 만큼 중대한 법규위반이다.
산은은 또 2000년 7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출에 대해 금융감독원에 허위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제출한 차입신청서에 대표이사 서명이 원본과 다르고 부채현황표조차 제출하지 않았는데도 대출신청 하루 만에 형식적으로 여신심사를 한 후 대출을 해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종 책임은 실무자?=감사원은 감사결과 발표에서 ‘당시 이 총재와 박 이사가 여신한도 규정 위반 사실을 알면서도 대출을 지시 또는 승인했다’고 밝히면서도 2명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지 않았다.
박 이사는 일시당좌대출 4000억원이 여신한도 초과라는 걸 알면서도 대출을 지시했고 만기연장이 안 되는데도 이를 지시했다. 이 총재는 이를 보고받고 구두 승인했을 뿐 아니라 대출금의 사후관리를 소홀히 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결국 감사원은 대출 과정의 최종 책임이 이 총재와 박 이사에게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도 상사의 지시에 따른 실무자 문책만 요구한 셈이다.
▽감사원의 산은 봐주기 논란=지금까지 금융기관에 대한 감사원의 후속조치는 매우 강도가 높았다.
작년에는 경영정상화 이행약정(MOU)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2000여만원의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이유로 K서울은행장의 문책을 예금보험공사에 요구했다. 2001년 말에는 공적자금을 잘못 쓴 금융기관 임직원 등 5281명의 재산을 압류하고 60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금융계 관계자들은 “감사원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사법처리 불가론’에 따라 검찰 고발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산은 임원들에 대한 문책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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