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의 2억달러 송금 외에 현대전자의 증발된 1억달러까지 북한으로 송금됐다면 실제 대북 송금액은 더 늘어나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 보면 대북 송금은 현대상선뿐 아니라 현대아산 현대건설 현대전자 등 현대그룹 주요 계열사 차원에서 이뤄졌으며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사라진 1억달러〓2000년 상반기는 국제 반도체값이 오른 덕택에 현대전자의 자금사정에 여유가 있던 시절이었다.
현대전자는 2000년 5월 스코틀랜드 반도체공장을 매각한 대금 1억6200만달러 중 8000만달러를 미국법인에, 2000만달러를 일본법인에 보낸 뒤 두 곳의 돈 1억달러를 다시 영국 현지법인으로 보냈다.
이어 영국 현지법인은 이 돈을 현대건설이 중동지역 두바이에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현대알카파지로 송금했다.
현대전자는 재무제표에 1억달러를 단기대여금으로 표시한 뒤 2000년 말 결산 때 이 돈을 회수할 수 없다고 전액 손실처리했다.
문제의 현대건설 페이퍼컴퍼니는 다음해인 2001년 9월 청산됐다. 1억달러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왜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했나〓현대전자의 영국 현지법인이 현대건설의 중동지역 페이퍼컴퍼니로 송금하면 국내에서는 현실적으로 이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알카파지는 2001년 9월 청산돼 없어졌기 때문에 1억달러가 어디에 쓰였는지는 당시 현대건설 재무팀 관계자밖에 알 수 없다.
금융감독원이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적발할 때처럼 계좌추적과 해외 현지조사가 수반된 대규모 특별감리를 벌이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중동지역 국가들은 외자유치를 위해 ‘검은 돈’이라도 비밀을 철저히 보장해준다.
알카파지가 공교롭게도 ‘9·11테러’가 일어난 날 청산됐다는 점도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테러 발생 직후 미국 정부가 테러조직을 지원하는 자금줄을 조사하겠다고 밝히자 현대가 자금추적을 하지 못하도록 서둘러 청산했다는 분석이다.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는 “우리는 대여 형태로 현대건설에 돈을 빌려줬을 뿐 그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른다”면서 “당시엔 현대전자가 그룹의 영향력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룹의 지시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대북지원 총액은 얼마인가〓현재까지 드러난 대북 송금액은 현대상선이 보낸 2억달러(2235억원)뿐이다. 하지만 옛 현대전자가 현대건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억달러를 추가 지원했다는 채권단 관계자의 증언이 사실로 드러나면 규모는 3억달러로 불어난다.
2000년 당시 금융계에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5000억원 정도가 북한으로 건네졌다는 소문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는 당시 환율로 4억달러에 해당한다.
한편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친분이 깊은 한 경제계 원로는 최근 내일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2000년 10월 정 명예회장이 나를 불러 ‘북한개발권 대가로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싱가포르에 있는 북한 계좌로 5억달러를 넣었다’고 말했다”면서 “정 명예회장은 ‘평화를 사는 데 5억달러가 아깝냐. 100억달러도 싸지’라고 얘기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부분은 추가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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