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船 검찰고발 막아라” 숨은손 작용?

  • 입력 2003년 2월 5일 06시 43분


현대상선이 산업은행 대출금 4000억원 관련 자료 제출을 더이상 미룰 경우 검찰에 고발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긴급 대응해 아슬아슬하게 고발을 피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에 따라 감사원의 고발 방침이 사전에 현대상선측에 유출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감사원의 자료제출 요구를 3차례나 거부했던 현대상선은 감사위원회 개최 직전인 지난달 23일 업무 종료시간에 임박해 산업은행 대출금 사용 내용 등이 담긴 자료를 닷새 뒤인 28일까지 제출하겠다고 감사원에 전화로 급히 통보했다.

당시 감사원은 이튿날인 24일 오전 9시반 임시 감사위원회를 열어 현대상선에 대한 검찰 고발 결정을 내릴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감사원은 검찰 고발에 방향을 맞춰 회의자료인 부의(附議)안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였으나 현대상선측이 갑자기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통보해 옴에 따라 감사위원회를 연기하고 회의자료를 폐기 처분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세 번씩이나 자료제출 요청에 응하지 않던 현대상선이 갑자기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힌 것은 (감사원이 현대상선을 고발키로 했다는) 정보가 미리 새나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며 “조금만 늦었어도 곧바로 검찰에 고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검찰에 고발됐다면 검찰 수사 여부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검찰도 수사유보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검찰은 현대상선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감사원에 통보한 23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 회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감사원의 고발에 대비한 수사 준비에 착수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이 자료 제출 방침을 감사원에 긴급 통보해 감사위원회를 연기시킨 것은 정부 차원의 조율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자료를 제출하자 ‘현대상선측이 일단 2235억원을 대북사업에 사용했다고 밝혔다’는 이유를 들어 고발 방침을 철회했고 30일 감사원 방침을 보고 받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곧바로 ‘사법심사 부적절’ 의사를 밝혔다. 이어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과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도를 밝히면서 검찰도 수사 유보 결정을 내렸다.

이 같은 과정으로 미뤄볼 때 검찰 수사로 대북 비밀 송금의 전모가 드러날 경우 현 정부가 감당하기 어려운 곤경에 처하거나 남북관계가 결정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가 이를 피하기 위해 감사원 회의를 연기시키려고 현대상선측과 사전조율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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