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스러운 노 당선자측과 민주당▼
노 당선자측을 비롯한 여권의 신주류는 이날 대국민 설득 차원에서 ‘결자해지(結者解之)’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DJ의 직접 해명’이라는 카드를 내세워 청와대를 압박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직접 해명’ 요구를 일축하고 나서자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노 당선자측 내부에서는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김 대통령이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까지 터져 나왔다.
‘DJ의 직접 해명’카드는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먼저 물꼬를 텄다. 이날 한 대표가 사견을 전제로 이 문제를 거론하자 노 당선자측은 “옳은 얘기”라며 손뼉을 쳤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여권내 신-구 주류 3자간에 이번 사건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물밑 조율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실제 민주당의 몇몇 의원들은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에게 김 대통령의 직접 해명 및 사과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이를 청와대측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DJ의 직접적인 대국민 설득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공감대가 여권 내에서 광범위하게 형성된 셈이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이 직접 해명을 거부함으로써 여권 내에서도 특검 수용론이 더욱 우세해질 전망이다. 이미 노 당선자측은 “국회에서 특검에 합의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해 놓은 상태다.
이날 민주당 의총에서도 특검 수용론은 만만치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김 대통령의 해명으로 물러설 리가 없다. 한나라당이 끝까지 특검제를 요구하면 공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특검제 불가피론을 제기했다.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대북 문제에 있어 비밀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남북관계는 공개된 상태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버티는 청와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5일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 의혹에 대한 해명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선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짙다.
김 대통령은 이날 “북한과의 거래를 전부 공개하는 것은 국익에도 남북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달 30일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시인하면서 제시한 논리와 같지만 그 속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는 전혀 다르다.
지금은 노 당선자측이 지난달 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청와대가 직접 해명하라”고 공개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김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노 당선자측이 진상공개 압박을 계속할 경우 결별도 불사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청와대 일각에서는 “노 당선자측이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느냐. 노 당선자는 대선을 혼자 치렀단 말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청와대측이 이처럼 강력하게 버티기를 하는 이면에는 확실한 지역 정치기반도 없고 원내 의석도 부족한 노 당선자측이 김 대통령과 정면 대결하는 상황은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김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은 건재하다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이다.
청와대는 또 현재의 분위기로 볼 때 대북 비밀송금 의혹의 진상을 설명한다 해도 국민이 어떻게 이를 납득하겠으며, 야당이 특검제 요구를 철회하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단 진상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에 대한 의문이 꼬리를 물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특검제로 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며 “차라리 ‘국익차원’이었다는 명분이라도 세워야 특검제로 가더라도 할 말이 생긴다”고 말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강경한 한나라▼
한나라당은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해법을 둘러싼 청와대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의 갈등을 은근히 즐기는 분위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5일 대북 비밀송금 의혹 사건에 대해 직접 해명하라는 노 당선자측의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국민 여론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기대다. 특히 여권내 갈등이 증폭될수록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제 도입 요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여권내 갈등을 활용해 특검제를 관철하고 정국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이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진상을 밝히고 국민을 속인 데 대해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안은 명백한 범죄행위이고 단순한 정치적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특검제가 필요하다”며 김 대통령을 압박하면서 특검제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박 대행은 이어 “(현대상선의) 대북 4000억원 비밀지원뿐만 아니라 현대전자의 영국 스코틀랜드 반도체공장 매각대금인 1억5000만달러가 북한에 송금됐다는 강력한 자료를 갖고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도 “김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더라도 대북 비밀송금 의혹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보다는 격앙돼 있는 국민 정서를 달래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그쳤을 것”이라며 “특검제를 반드시 관철해 이번 사건에 쏠린 국민적 의혹을 철저히 해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노 당선자측이 ‘정면돌파’를 위한 반격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중진의원은 이날 “노 당선자측의 한 핵심 인사가 ‘당선자는 이번 사건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며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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