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北송금 규명없인 改革 공염불”

  • 입력 2003년 2월 7일 18시 54분


청와대가 현대그룹 계열사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을 덮으려고 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시민단체는 ‘재벌개혁 후퇴’를, 재계는 ‘형평성 결여’를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 경제부처 공무원들도 대북 비밀송금은 전형적인 정경유착이며 이를 그대로 덮으면 외환위기를 초래한 한보와 기아사태의 재판이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해온 김상조(金尙祖·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7일 “대통령의 ‘통치행위’인지 민간기업의 ‘대북사업’인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쪽이라고 해도 현대상선의 주주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본 심각한 사안”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대의 존폐’를 거론하며 진실을 밝힐 수 없다고 하지만 기업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은 시장”이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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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소장은 “통치행위라면 비용을 국가 재정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민간기업, 특히 주주들의 부담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라며 “통치행위 여부도 당사자가 아니라 사법당국이 판단할 사안”이라고 비판했다.

현대그룹을 제외한 재계는 허위공시와 부실회계로 주주에게 피해를 준 사건을 덮어 버리고 강도 높은 재벌 개혁을 강조한다면 이는 ‘현대 봐주기와 다른 그룹 죽이기’를 의미한다고 반발했다.

재계 관계자는 “노 당선자측이 ‘재벌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대북 비밀송금 의혹을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면 개혁의 명분을 상실할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금융감독원의 고위 당국자는 “정경유착이 지속되는 것은 결국 돈 문제로 귀착되는 것 아니냐”며 “이번 사건도 기업과 권력이 돈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발생한 사태”라고 지적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정치권의 압력으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돈을 빌려준 것은 과거 정권의 관치금융 관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면서 “외환위기를 초래한 한보 기아사태에서 보듯 정경유착은 경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우려했다.

금감위 당국자는 “기업은 통상 신용이나 현금흐름이 나빠지면 눈을 권력이 있는 쪽으로 돌린다”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유착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때문에 초기에 관계를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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