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현대그룹은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태였으나 대북사업이 정부의 햇볕정책과 연계됨으로써 정부의 구조조정 압박을 피해갈 수 있었다. 금감위에서 기업구조조정을 담당했던 관계자는 “당시 현대그룹이 대우보다 더 급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아무도 현대에 대해서는 별다른 손을 쓰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채권단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북한에 송금한 2000년 6월 이후 채권단은 하이닉스로 인해 6조8000억원, 현대건설 때문에 2조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채권단 관계자는 “공적자금을 지원받아 간신히 살아난 채권금융기관들은 출자전환 등 현대에 대한 추가지원에 회의적이었다”며 “하지만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해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고 말했다.
소액주주들은 주가폭락과 구조조정에 따른 감자로 인해 하이닉스 6조2000억원, 현대건설 1조2000억원, 현대상선 1400억원 등 어림잡아 7조5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2000년 6월 2만원대였던 하이닉스 주가는 7일 230원으로 주저앉았다. 하이닉스의 소액주주들은 조만간 실시될 21 대 1 감자로 더 큰 손실을 입게 된다.
알짜기업이었던 현대상선의 주가는 2000년 6월 12일 6000원에서 1720원으로 71%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현대건설의 주가는 5800원에서 1300원으로 하락했다. 2001년 6월 실시한 5.99 대 1의 감자를 감안하면 217원에 불과한 셈이다.
이처럼 소액주주와 채권단이 큰 피해를 보는 데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의 측근 인사는 최근 “이 위원장은 1999년 3월 현대그룹을 정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전혀 진척되지 않다가 2000년 하반기에야 시작됐다”며 “대북 비밀송금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야 현대그룹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현대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차일피일 미루면서 소액주주만 더 큰 피해를 떠안은 셈이다.
참여연대 김상조 경제개혁센터 소장(한성대 교수)은 “대북송금이 ‘통치행위’인지, 대북사업의 일환인지에 관계없이 현대상선은 소액주주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며 “이번 기회에 소액주주 등 피해 당사자들의 손실을 보전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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