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당선자, "기업과 국민 함께 잘사는 나라"

  • 입력 2003년 2월 14일 14시 52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14일 "정부행정의 비효율성, 지나친 간섭, 또는 행정이 경제를 리드해 나가는 관행은 임기중에 반드시 개혁하겠다"고 강조했다.

노 당선자는 이어 "기업을 어렵게 만들었던 불필요한 규제와 준조세를 과감히 혁파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꼭 필요한 경우에 규제를 하더라도 기업에서 볼 때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있고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또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는 기업만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그런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여러분 기업인들의 몫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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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당선자는 이날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열린 전경련의 최고경영자 신년포럼에 참석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주제로 연설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쓸만한 기업들은 거의 4대 재벌로 편입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나친 경제력 집중이 사회통합과 계층통합을 해치고 있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재계 인사들에게 주문했다. 이어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에 언급하면서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서 브랜드 가치와 CEO가치는 매우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현재 주요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는 높은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성을 임원 인선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이밖에 "한국경제에 진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족생존과 직결돼 있다"면서 "앞으로 투명한 절차와 방식을 활용해 북한과 대화와 타협을 유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또한 미국방문 문제와 관련, "이달 25일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 미국을 방문할 것이며 부시 대통령과 직접 만나 북핵 문제의 합리적인 해법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노 당선자의 주요 연설내용

- 90년대 후반 외환위기가 우리 경제를 강타하자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당면 현안으로 등장했다. 아울러 위기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재벌 시스템의 개혁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대두됐다. (당시에는)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기업, 은행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체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 (외환위기 이후 4대부문 구조개혁 관련) 기업 부문에서는 건전성을 제고하고 투명, 책임경영을 확산시키기 위해 사외이사 및 감사위원회 제도 도입, 소수주주권 보호, 결합재무제표 확대, 회계 및 공시제도 개혁 등을 추진했다. 개혁성과에 대해서는 긍정, 부정 등 다양한 평가가 있다. 기업의 부채비율이 400%에서 136%로 낮아지고 금융부문에서는 관치금융이 사라졌다.

- 그러나 장밋빛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1년 기준으로 이자보상배율이 200%미만인 상장회사가 전체 상장사의 42%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의 수익성이 낮고 잠재부실기업이 아직도 많다는 얘기다. 중국과 기술격차가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설비투자도 GDP대비 10% 수준에 머물러 있다.

-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기피하고 국내 기업들도 해외투자를 선호하는 경향이다. 외형을 부풀리고 지배력을 부당하게 행사하는 대기업 집단들의 건전하지 못한 행태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 쓸만한 기업들은 거의 4대 재벌로 편입됐다는 지적도 있다. 지나친 경제력 집중이 사회통합과 계층통합을 해치고 있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 공기업도 민간기업처럼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 민영화된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민영화 기획당시 기도했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잘 설계돼 있는지 의심의 여지가 있다. 공기업 민영화가 민영화를 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는 얘기가 있지만 지배구조까지 잘 개선시켜 공기업을 민영화한다면 최상이 아닐까 생각된다. CEO가 전체 주주의 권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부 지배주주나 최고경영진들의 사사로운 이익을 쫓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노조의 눈치만 살피는 경우도 있다. 정부 소유라면 공익적 필요가 있을 때 적절히 규제할 수 있지만 민영화를 하고 나니까 규제수단만 없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지배구조를 감안하지 않은 무분별한 민영화는 오히려 새로운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 민영화된 공기업 중에는 세계적 대기업도 있다. 세계 수준의 기업에는 그에 걸맞는 높은 수준의 윤리경영이 요구된다. 최근 기업을 평가하는 데에서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것이 새로운 추세다.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서 브랜드 가치와 CEO가치는 매우 중요하며 그런 점에서 현재 주요기업이나 금융기관의 임원추천위원회는 높은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성을 임원 인선의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 기관투자가들도 주주총회에서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투명경영과 책임경영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인지 소신껏 검증해야 할 것이다. 이런 원리는 민영화된 공기업 뿐 아니라 모든 민간기업에 적용돼야 할 일반원리다.

- 우리 스스로는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가 대폭 개선됐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외국 투자가들의 눈에는 여전히 미흡하고 미진한 부분이 남아 있다고 본다.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과 같은 명백한 불법행위가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 국내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가 증권분야 집단소송제 도입에 찬성했다는 것은 반추해 볼 만 하다.

- 일반 국민들은 아직도 세금없는 대물림 관행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땀흘리지 않고 쉽사리 부를 이전하고 축적하는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풍토는 빠른 시일내에 불식돼야 한다.

- 이라크 전 장기전으로 갈 간다는 전망이 별로 없다. 이 전망대로라면 급등하는 유가가 서서히 안정되고 세계경제의 회복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있다.

- 며칠전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조정하는데까지 영향을 미쳤던 북핵문제는 제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과제다. 무디스의 발표 직후 금융시장이 일시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이내 안정됐지만 요사이 우리의 자체적인 역량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운 국가위험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분명하게 여러분께 약속드린다. 한국경제에 진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는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족생존과 직결돼 있다. 앞으로 투명한 절차와 방식을 활용해 북한과 대화와 타협을 유도해 나가겠다.

- 2월25일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면 적절한 시기를 선택해 미국을 방문할 것이며 부시 대통령과 직접 만나 북핵 문제의 합리적인 해법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겠다.

- 끝으로 내수위축 문제다. 재정의 조기집행으로 대응하는 방법 이외에는 선택가능한 대안이 별로 없다. 얼마전 겪은 일부 지역의 부동산가격 폭등, 가계부채 및 신용카드 문제 등에서 보듯 내수촉진 시책은 일정한도를 초과하면 부작용이 매우 크다. 이런 부작용들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고는 있으나 아직은 민간소비를 부추키는 정책을 채택할만큼 경기상황이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 단기과제의 해결에만 지나치게 얽매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경제가 안정적으로 커 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측면에서 경제의 기본 체질을 개선하고 기초 체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병행해야 한다.

- 기업을 어렵게 만들었던 불필요한 규제와 준조세를 과감히 혁파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 규제 개혁에서 규제의 건수가 많으나 적으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측가능성과 일관성이다. 꼭 필요한 경우에 규제를 하더라도 기업에서 볼 때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이 있고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저는 정부행정의 비효율성, 지나친 간섭, 또는 행정이 경제를 리드해 나가는 관행은 임기중에 반드시 개혁하겠다. 이와 같은 정책비전과 국정원리를 통해 행정개혁을 완수하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겠다.

- 기업하기 좋은 나라에서는 기업만 좋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도 살기 좋은 나라가 되어야 한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국민도 살기 좋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바로 여러분 기업인들의 몫이라고 본다. 제가 기업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할테니 여러분은 국민을 위해 노력해 달라.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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