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대통령은 검찰이나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이 문제는 법률적으로 다루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문자 그대로 제가 책임질 일은 책임진다는 것이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발언은 관련자 누구에게도 실정법의 잣대로 ‘법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어서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이날 한나라당측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한편으론 책임을 지겠다면서도 국익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강변하며 엄연한 실정법 위반과 국기 문란 범죄행위에 대해 아무 책임도 묻지 말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특보가 정상회담을 위한 뒷거래 의혹을 부인하고 ‘현대측의 필요’를 강조한 데 대해서도 한나라당측은 ‘책임 전가’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다 김 대통령이나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 임 특보는 24일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퇴임하게 돼있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책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으로서 역사 앞에 총체적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실제 김 대통령은 13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가진 오찬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공과(功過)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北송금 관련 문답▼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4일 2235억원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해 설명한 뒤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와 함께 직접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음은 문답 요지.
―임 특보로부터 현대가 대북 사업 대가로 5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한다는 사실을 보고 받았나.
▽김 대통령=그때는 정상회담에 몰두하고 있었다. 현대 관계 보고를 잠깐 들은 기억이 있다. 그 문제는 이미 이뤄진 것이었고, 남북의 평화나 국익을 위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수용했다.
―특검제 도입을 통해서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데….
▽김 대통령=법률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국익을 위해 적절치 않다. 감사원과 검찰도 그런 생각에서 법적으로 문제삼는 것을 유보했다. 정치권에서도 남북관계와 국익을 생각해서 그런 방향으로 선처해 주기 바란다.
―검찰 또는 특검 조사에 응하거나 출두해서 진상을 밝힐 용의가 있는가.
▽김 대통령=이 문제는 법률적으로 다루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내가 책임질 일은 책임진다는 것이다.
―임 특보가 당시 국가정보원장으로서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편의 제공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임 특보=당시 정상회담 준비에 전념하고 있어서 이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지 못했다.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보고를 받지 못해서 돈이 (북한에) 갔는지도 모르고 있다가 이번에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알게 됐다. 대통령에게 보고 드리지도 못했다. 송금 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게 별로 좋을 것 같지 않다.
―현대가 환전 편의 제공을 요청했을 때 무슨 명목이었나.
▽임 특보=당시 이미 현대와 북측간에 7대 경협사업이 합의가 이루어졌고, 권리금으로 5억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기들이 약속한 시간에 보내는 데 절차상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박 비서실장은 2000년 3월 싱가포르에 간 것이 개인적 용무라고 말해오지 않았나.
▽박 비서실장=당시 싱가포르에서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만났다. 그러나 남북 당국간 접촉을 시작하면서 북측에서는 몇 차례 성명을 통해 국정원이 개입하지 말도록 촉구해 내가 특사로 결정됐지 않았나 생각한다. 북측에선 내가 대통령의 측근임을 확인하고 상견례만 하는 자리였다. 정상회담의 탐색전이었다. 당시 북측은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구했고, 나도 앞으로의 진전이 확신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의해줬다. 이는 외교관례상 지켜줄 수밖에 없다. 국회에서 질문했을 때 외교관례상 전모를 말씀드리지 못한 것을 양해해주기 바란다.
―5억달러가 다 북한으로 갔나.
▽임 특보=나머지는 모르겠다. 2억달러의 송금 편의를 제공할 때에 국정원 계좌를 이용하지는 않았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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