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北송금 해명]'5억달러 실체 해명' 現代에 떠넘겨

  • 입력 2003년 2월 14일 19시 00분


▼현대그룹 대응전망▼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대북 송금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현대그룹 계열사들은 이제 대북 송금 문제가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나 현대측은 진상을 여전히 밝히지 않아 ‘정경유착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대측 반응=대북 송금 창구 역할을 한 현대상선의 노정익(盧政翼) 사장은 14일 “기업이 대통령의 담화에 대해 평가를 내릴 수는 없다”면서 “다만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까지 발표한 만큼 이제 대북 송금 문제가 일단락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현대 계열사 관계자는 “약으로 치료할 걸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된 셈”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2000년 당시에는 대북 송금 사실을 밝히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었겠지만 의혹이 제기된 지난해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번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시범 관광을 떠난 현대아산의 한 직원은 “이제 남북경협 활성화에 주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대의 대응 전망=현대그룹 관련자들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진상을 밝힐 것인지 주목된다.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은 이날 금강산 시범 관광길에 오르면서 “(현대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면 밝히겠다”고 말했다.

현대가 대북 송금 내용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밝힐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날 발표에서 확인된 사실은 ‘대북 송금 총액이 5억달러이며 현대상선이 2억달러를 보냈다’는 것. 따라서 나머지 3억달러를 어떤 계열사가 부담해, 어떤 과정으로 송금됐는지에 대한 해명은 현대의 몫으로 남았다. 현대상선이 부담한 2억달러도 어떤 과정으로 송금됐는지가 분명치 않은 상태다.

이 같은 내용이 공개될 경우 당장 소액주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소송이 벌어지면 회사에 결정적으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현대가 제대로 밝힐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외신 반응▼

세계 주요 외신은 14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對北) 송금 관련 성명 발표 소식을 서울발로 신속하게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날 사과 성명은 퇴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김 대통령의 업적을 훼손하고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FP통신은 북한에 대한 2억달러 송금은 통일부의 승인 없이 이뤄진 것으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규정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기술적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에 송금된 2억달러의 사용처와 정부의 역할이 이슈라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한국 정부가 대북 송금이 불법임을 알았지만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허용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성한 대북 송금 스캔들에 대해 사과했으나 김 대통령이나 한국 정부는 어떠한 대가성 있는 자금도 지불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했다.

뉴욕 타임스도 김 대통령은 잘못을 시인했지만 오로지 평화를 보장하고 국익을 신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보도했다. BBC방송은 김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대를 통해 북한에 거액을 송금하는 것을 알고 있었음을 시인했다고 전했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김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매듭을 짓기 위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햇볕정책의 핵심인 남북교류에 불신감이 남는다면 대북 지원 유지를 약속한 노무현(盧武鉉) 차기 정부에도 영향을 줄 것이며 현대 지원금이 핵 개발 등에 유용됐을 것이라는 의혹 때문에 앞으로 미국과의 의견 조율에도 과제가 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처벌은 어떻게▼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관련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은 어떤 실정법을 위반한 것일까.

법조계는 14일 발표된 내용만으로도 실정법 위반 사례가 적지 않다는 반응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우선 대통령 자신이 실정법을 위반했다고 스스로 시인했을 뿐 아니라 당시 국가정보원장이었던 임 특보 등이 송금 편의 방안을 찾아볼 것을 지시한 것 등도 모두 법을 위반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이날 해명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내용 중에서도 그 진행과정으로 볼 때 실정법 위반이 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선 국정원이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 과정에서 환전 편의를 제공한 행위는 외국환거래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국정원이 재정경제부 등에 신고하지 않았을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또 청와대나 국정원 고위간부 등이 돈세탁 과정 등에 개입, 다른 사람에게 ‘의무없는 일’을 강요했을 경우 직권남용죄나 금융실명제법으로 처벌될 수도 있다.

또 현대상선이 국내에서 2235억원을 반출할 당시 통일부의 승인이 없었다면 남북교류협력법의 적용도 가능하다.

박 비서실장은 국회에서 송호경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을 만난 사실을 부인한 만큼 위증죄 등으로 처벌될 수 있다.

정건용(鄭健溶) 산업은행 총재가 국회에서 4000억원 대출을 명백한 위법이라고 밝힌 만큼 여신 한도를 지키지 않은 산은 관련자들에 대한 산은법 적용도 예상된다.

그리고 김 대통령에 대해서도 앞으로 특검 등의 수사를 통해 부당대출 지시나 불법송금 지시 등 사실 여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형사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임 특보의 경우 그의 검토 지시에 따라 이뤄진 송금 편의 제공으로 인해 외국환거래법 등의 적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산은과 현대 관계자에게도 업무상 배임 등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 밖에 대출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권력 실세와 송금 과정에 개입한 국정원 간부들도 혐의가 드러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대북송금 핵심관련자 실정법 위반 여부
이름연루 내용·의혹 사항실정법 위반 여부
김대중 대통령부당 대출 지시 의혹

불법 송금 지시 의혹

형법(직권남용)

외국환거래법 등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

2000년 3∼4월 북한 송호경

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접촉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에

관한 법률(위증) 등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보

2000년 6월 현대상선의 2억달러

송금편의 제공

산업은행에 대한 대출 압력 의혹

외국환거래법

남북교류협력법

국가정보원법(직권남용) 등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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