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北송금 해명]풀리지 않은 7大 의혹…나머지 3억달러?

  • 입력 2003년 2월 14일 19시 00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4일 대국민 담화 내용은 대북 비밀송금 문제를 둘러싼 무성한 의혹을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의문을 증폭시켰다. 김 대통령과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통일특보,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 등 이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세 사람이 밝힌 ‘사건의 진상’은 그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사실을 마지못해 인정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국가정보원의 대북 송금 개입 사실을 보고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김 대통령과 임 특보의 말이 서로 엇갈려 해명 내용 자체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의구심까지 나오고 있다.》

▼①회담과 무관하다면 왜 급히 송금했나▼

▽현대의 대북 송금과 남북정상회담은 무관한가=임 특보는 현대가 대북 송금한 5억달러는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등 ‘대북 7대 사업’을 확보하기 위한 권리금으로, 남북정상회담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대는 금강산관광개발 대가로만 98년 북측에 9억4200만달러를 주기로 하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를 지급해오고 있어 임 특보의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더욱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현대가 산업은행에 대출신청(2000년 6월5일)→대출 및 환전(7일)→송금(9일 또는 10일)등으로 바쁘게 일을 처리한 이유가 분명치 않다.

박 실장-송호경(宋浩景)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싱가포르 비밀접촉(2000년 3월8∼10일)과 김 대통령의 베를린선언(2000년 3월10일) 시기가 겹치고, 베를린회담이 정상회담으로 연결된 것으로 볼 때 비밀접촉 때부터 이미 정상회담을 대가로 한 송금문제가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 총재는 지난해 9월25일 국회 정무위 증인으로 출석해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사장을 만났더니 김 사장이 ‘현대상선이 쓴 돈이 아니다. 돈은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말해 정상회담과 대북 송금의 연관성을 강력히 시사했다.

▼②4000억 대출 외압의혹엔 아예 침묵▼

▽산은 대출에는 누가 개입했나=정상회담 직전 현대가 산은에서 4000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도 정부가 개입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날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해명도 없었다. 산은은 국책은행이어서 정부가 대출압력을 가하기가 일반 시중은행보다 쉬웠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2000년 6월 현대가 산은에 ‘통일부와 국정원의 허락을 받았으니 4000억원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을 때 국정원이 ‘문제가 없으니 빌려줘라’고 한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엄 전 총재도 작년 국정감사에서 “김보현(金保鉉) 국정원 3차장을 만나 4000억원의 회수문제를 물어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③금융계 "건설-전자 3억달러 송금" 추측▼

▽나머지 3억달러는 누가 보냈나=지금까지 경위가 밝혀진 대북 송금액은 현대상선이 산은서 대출받아 보낸 2억달러가 전부. 같은 시기 옛 현대전자가 현대건설로 보냈다가 사라진 1억달러는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큰데도 확인되지 않았다.

금융권에서는 △현대상선 2억달러 △옛 현대전자 1억5000만달러 △현대건설 1억5000만달러 등으로 송금 자금을 조달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김 대통령은 이날 나머지 3억달러의 행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현대의 대북 송금 총액은 임 특보가 밝힌 5억달러를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한나라당 이해구(李海龜) 대북뒷거래진상조사특위위원장은 “총 송금액은 10억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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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6월9일 송금" 林특보 주장 사실과 달라▼

▽2억달러는 언제 송금했나=임 특보는 “2억달러는 2000년 6월9일 송금됐다”고 밝혔으나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한나라당은 6일 감사원 현장 방문시 “문제가 된 2240억원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6명이 배서해서 2000년 6월10일 외환은행 본점 영업부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송금시기에 대한 임 특보(9일)와 감사원 감사결과(10일)의 주장은 하루 차이가 난다. 이 차이는 남북정상회담 연기사유를 가릴 매우 중요한 단서다. 임 특보의 말대로라면 2000년 6월9일 송금, 10일 북한측의 정상회담 하루 연기, 13일 정상회담이 된다. 그러나 그동안에 밝혀진 내용을 종합하면 10일 북측의 연기통보, 10일 송금, 13일 정상회담이 된다. 즉 북측이 돈을 받지 못해 연기를 통보했고, 서둘러 입금을 한 뒤에야 결국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⑤DJ "송금 들었다" …林 "보고 안했다"▼

▽정부가 어느 선까지 개입했나=임 특보는 2000년 6월 국정원장 재직 당시 현대의 환전 편의 제공 요청을 받고 그것이 가능한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한 것이 전부이며 그후 바빠서 실제로 돈이 갔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실정법 위반 사안인 대북 송금을 실무자가 알아서 처리했다는 것이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 임 특보는 2억달러 송금 사실을 안 것도 최근 논란이 된 이후라고 주장했으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외환은행 관계자나 금융권의 주장에 따르면 국정원이 환전은 물론이고 국정원 가명계좌를 이용해 송금에까지 개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임 특보는 이날 “송금할 때 국정원 계좌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환전을 해서 이를 다시 현대측에 넘겨줬다는 정황은 어디에도 없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현대 관련 (실정법을 위반한 대북 송금) 얘기를 잠깐 들었다”고 말해 “대통령에게는 보고하지 않았다”는 임 특보와 엇갈린 설명을 했다.

▼⑥"현대가 정상회담 추진" 책임 떠넘기기▼

▽남북정상회담은 누가 추진했나=청와대는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은 2000년 3월 김 대통령이 베를린선언을 발표한 데 대해 북한이 화답함으로써 성사됐다고 설명해 왔다.

이날 박 실장은 “당시 남북 당국간 접촉을 시작하면서 북측에서 국정원이 개입하지 말라고 해서 내가 특사로 갔다”고 말해 정상회담이 ‘정부 주도’로 성사됐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임 특보는 이날 “정상회담은 현대가 자신의 대북 사업을 위해 추진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기존의 정부 설명은 물론 박 실장의 해명과도 모순된다.

▼⑦朴실장 "청와대측근 송금개입" 시사▼

▽대통령 측근이 밀실에서 주도했다=이날 박 실장은 2000년 3월 초 싱가포르에서의 대북 비밀접촉 사실을 시인하면서 “북측에서는 내가 대통령의 측근임을 확인하고 상견례를 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비공식 라인에 의해 밀실에서 추진됐음을 의미한다. 이는 그만큼 김 대통령의 의지가 실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비밀접촉 자리에 당시 정몽헌(鄭夢憲) 현대 회장 등이 동행했다는 것은 북측이 우리 정부의 정상회담 추진과 현대측의 사업독점권 추진을 패키지(묶음)로 이해했고, 현대로부터 돈을 받는 대가로 정상회담에 합의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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