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北송금 특검' 정국 회오리…한나라 VS 민주

  • 입력 2003년 2월 16일 18시 14분


금강산 육로시범관광 행사를 마치고 16일 오후 강원 고성군 임시출입관리사무소를 통해 귀환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북 비밀송금 경위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고성=이훈구기자
금강산 육로시범관광 행사를 마치고 16일 오후 강원 고성군 임시출입관리사무소를 통해 귀환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대북 비밀송금 경위에 관한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고성=이훈구기자
▼힘얻은 한나라▼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검법안 강행처리 방침을 고수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앞으로 ‘특검정국’을 주도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송금사건에 대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14일 직접 해명이 오히려 의혹을 부풀려 특검에 대한 국민적 명분을 얻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영일(金榮馹) 사무총장은 15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회가 법에 따라 이 사건을 처리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이라면서 28일 끝나는 이번 임시회기 내 특검법안 처리 방침을 분명히 했다.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가 김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직후인 14일 저녁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이 같은 강경기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국 성인 1700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대통령의 해명으로 ‘의혹이 해소됐다’는 응답률은 27.4%에 그쳤고, ‘의혹이 증폭됐다’는 55.6%였다.‘특검에 찬성한다’는 대답은 61.2%이었다.

한나라당은 특검 정국을 주도함으로써 대선 패배 후 흐트러진 당의 전열을 추스르는 한편, 노무현(盧武鉉) 새 정부 출범 후 휘몰아칠 정계개편의 파고를 헤쳐나간다는 전략이다. 여기엔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 포석도 짙게 깔려 있다.

하지만 ‘특검 드라이브’에 대한 국민적 반감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당 지도부의 고민이다. 한나라당의 공세가 ‘발목잡기’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가 특검법안 처리 시한을 당초 17일에서 25, 26일로 늦추며 민주당과의 협상 노력을 계속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공식적으로는 부인하지만, 당 주변에선 특검법안 처리와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의 ‘빅딜’설도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편 당 지도부는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 진상 규명과 사법적 처리를 분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며 특검에 반대하고 있는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1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진상을 밝히지 않고 국익을 고려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우선 조사한 뒤 국익 고려는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힘빠진 민주▼

민주당은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관련 당사자들이 직접 대국민 해명을 한 만큼 미흡한 점이 있다면 국회에서 초정파적인 합의로 이 문제를 마무리하자는 입장이다. 특검제를 도입해 세세한 것까지 들춰내는 것은 남북관계의 장래를 포함해 궁극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당사자들이 국회 정보위나 통일외교통상위에 출석해 비공개로 증언한 뒤 내용은 국익을 감안해 제한적으로 공개하되, 특검제는 반대한다는 게 민주당의 당론이다.

민주당은 특검제 법안을 17일 국회 법사위에 상정하는 데 동의한 것도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14일 단독으로 법안을 상정해 통과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시간벌기용’이었지 법안 내용까지 수용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16일 “북한 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엄중하고, 이라크 전쟁 임박에 따른 물가상승 등 민생불안 요소가 커지고 있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이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고 경제를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두(金在斗)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나라당이 특검제만 고집하는 것은 당내 개혁과 인적 청산을 둘러싼 내홍을 덮고 내년 총선까지 정치공세의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술책”이라며 특검제 주장을 야당의 정략으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당 핵심 관계자들은 김 대통령의 해명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론을 도외시한 채 마냥 특검제 반대만을 외치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에서 간간이 흘러나오는 ‘특검제 불가피론’도 민주당으로서는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진상규명을 원하는 여론을 앞세워 특검제를 밀어붙일 경우 현실적으로 뾰족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이 김 대통령의 해명에 대해 “과연 저 정도로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지 하는 우려도 있다”고 말한 것이나 김경재(金景梓) 의원이 “국회에서 관련자 증언을 비공개로 듣고 나서 특검 수사든 검찰 수사든 따져도 늦지 않다”고 강조한 것도 특검제 수용의 여지를 남겨놓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특검법안 17일 법사委 상정▼

한나라당은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도입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17일 일단 법사위에 특검법안을 상정하고 25, 26일 양일간의 본회의에서 반드시 이를 통과시키기로 16일 결정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에서의 관련자 증언 등 ‘정치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어 특검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심화하고 있다.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특검법안은 17일 법사위에 상정할 방침이나 처리 일정에 여야 합의가 안될 경우 25일 또는 26일 국회 처리를 관철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25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취임한 뒤 고건(高建) 국무총리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어서 26일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26일 본회의 개최 자체를 반대하고 있어 25일에 강행 처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는 “한나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특검제를 강행처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한나라당이 단독처리를 시도할 경우 물리력으로 저지할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北송금 진상규명 필요” 75% SBS 여론조사…“특검 도입등 수사해야” 77% 한국일보 조사

상당수 국민은 14일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국민담화가 의혹 해소에 불충분하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 사건을 ‘정치적 해결’보다는 ‘수사를 통해 처리하자’는 국민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SBS가 15일 밤 TN소프레스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해명내용이 미흡하다’(52.7%)가 ‘충분하다’(26.6%)보다 많았다. 또 추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74.9%나 됐다.

북한에 송금한 돈의 성격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의 대가’(49.1%)라는 시각이 ‘대북 투자’(42.3%)라는 의견보다 많았고, 실정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45.0%)는 의견보다는 ‘공감하지 못한다’(54.1%)는 의견이 우세했다. 실정법 위반에 대한 처리 방안에 대해서도 ‘사법처리해야 한다’(53.3%)는 응답이 ‘안 된다’(42.4%)보다 많았다.

MBC가 같은 날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37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해명이 불충분하다’(42.7%)가 ‘충분하다’(28.6%)보다 많았다.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특검제를 도입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48.7%)가 ‘국회 내에서 정치적 타결을 모색해야 한다’(43.3%)보다 오차 범위(±3.1%) 내에서 많았다.

한국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이날 전국 800명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해결방안으로 ‘관련자 증언 후 의혹 있으면 특검 실시’(41.8%) ‘즉시 특검 도입’(35.4%) ‘검찰 수사’(12.6%) 순으로 나와 조사 대상의 77.2%가 어떤 식으로든 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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