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금이다. 우라늄이나 미사일이 문제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영변이다. 영변에 있는 플루토늄으로 북한은 수개월 내에 북한은 5개의 핵폭탄 제조가 가능하다. 한주 한주가 지나갈수록 문제 해결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북한이 공식적인 핵 보유국이 되면 동아시아 지역의 핵확산은 물론 테러국들에 이를 수출할 가능성도 크다. 비핵화만이 안전 보장의 핵심이다. 한반도는 현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중단할 수는 없다. 미국은 강경하고 창의적인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 한국 일본은 3국간 긴밀한 협상과 협력을 통해 사전에 입장을 조율해야 한다.”
▼질의 응답식 토론▼
▽알렉산드르 만소로프 교수(미국)=북한을 어떻게 대화 테이블로 나오게 할 수 있는가.
“북한은 파키스탄과 같이 공식적인 핵 보유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일 공식적인 핵보유국이 된다면 협상의 어려움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외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직접적인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마커스 놀랜드 연구원(미국)=협상이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하지만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첫째는 북한에 대한 신뢰문제이며, 과연 경제적 제재가 유용하냐에 대한 문제도 있다. 또한 일본과 한국은 북한에 대한 압박외교에 난색을 표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적 제재가 효과를 거둘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북한에 대한 불신을 무릅쓰고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막아야 하므로 대화의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중단하고, 미국은 한반도 주변 병력 증강을 중단해야 한다.”
▽방청객=중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두 가지를 이미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에게 제안했다. 첫째는 한국 북한 미국간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다시 받아들이고 1994년 합의안을 이행하도록 독려하는 큰형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승주 교수(한국)=1994년 기본합의를 통해 농축우라늄을 보유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는가? 또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중유 지원 중단은 실수였는가.
“나는 중유 지원 중단을 강력히 반대했었다. 북한이 영변시설을 재가동하는 정당성만을 부여하는 제스처기 때문이다. 북한의 농축우라늄이 94년 당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강경한 사찰 프로그램은 당시 기본합의의 안건에 포함될 수 없었다.”
▽스티븐 보즈워스 전 대사(미국)=1994년 기본합의문이 작성되기 전 이미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또 북한은 이 기본합의문을 미국과의 정식 외교 관계 체결의 전 단계로 해석했다는 점을 가정한다면, 미국과 동맹국들이 북한이 기대했던 기본합의문의 일부 조항들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같은 핵 위기를 초래한 측면이 있는 것 아닌가.
“그 같은 분석에 동의한다. 누가 먼저 약속이행을 어겼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한국 미국 북한 모두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팰러앨토=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북한의 지속과 변화▼
국제포럼의 첫 패널은 ‘북한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됐다. 각국 전문가들은 북한의 변화와 수구(守舊), 양면을 짚었다. 그 결과 대체로 ‘변화’ 보다는 ‘지속성’이 우세하다는 진단이 많았다. 그러자 토론은 자연스레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 ‘경제 지원이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킬 것인가, 지체시킬 것인가’등의 주제에 대한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첫 주제발표에 나선 고병철(高秉喆)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은 북한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권력의 극단적 집중 △주체사상의 변함없는 군림 △벼랑끝 전술로 상징되는 전술적 집요성 등을 꼽았다.
고 소장은 북한의 주요 변화로는 △중앙인민위원회 폐지와 국방위원장 권한 강화 등 통치구조의 조정 △패권적 통일에서 평등적 통일, 그리고 마침내 체제 유지로 격하된 국가 전략 목표의 변화 △2002년 7월의 경제관리 개선 조치로 대표되는 실용주의적 경제정책의 부상 △수년간의 수교국 급증과 일본인 납치 사과 등 대외정책의 변화를 꼽았다.
마커스 놀랜드 미국 국제경제연구원(IIE) 연구원은 “북한의 시장경제 요소 도입은 별다른 변화의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며 “북한의 시장 경제체제 요소 도입이 중국처럼 번영을 가져오기보다는 피해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한국산업은행 성태홍(成泰洪) 국제금융실장은 “북한 경제에 심대한 변화가 있었지만 농업 등 다른 분야를 도외시한 채 오로지 공업 분야에만 개혁을 국한시키는 단견에 그쳤다”며 “특히 비즈니스 마인드를 갖춘 경제전문가 등 개혁을 위한 인적 자원이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군사적 측면에서 북한이 동원을 해제한 기미는 없으며 오히려 일부 증가했다”며 “1991년의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햇볕정책 등 북한에는 국제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변화의 기회가 많았으나 북한은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출신인 알렉산드르 만소로프 미 아태안보연구센터(APCSS) 교수는 ‘통제 경제, 세계시장에서의 고립, 경제의 군사화, 일당독재와 우상화에 근거한 전체주의적 독재, 주체사상의 지배’ 등을 예로 들면서 “북한의 경제 정치시스템과 실질적 이데올로기, 핵심지배세력의 근본적 변화는 없다”고 진단했다.
로버트 스칼라피노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 석좌교수는 “김정일도 경제 붕괴 때문에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지만 문제는 그들은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으며 변화를 이끌어갈 테크노크라트 계급도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붕괴 가능성에 대해 놀랜드 연구원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본다면 북한체제는 이미 붕괴했다”고 단언했으나 만소로프 교수는 “굶주림의 만연으로 불만이 있지만 북한은 개인의 생존이 지상과제이며 김정일에 대한 충성이 곧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론과 관련해 토론자들은 북한을 고사(枯死)시키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 소장은 “북한은 집권층의 심리적 환경이 정책결정을 좌우하는 변수가 되는 사회”라며 “대북 정책결정 과정에서 도덕적 기준과 실효성을 조율하는 유연성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북한을 얼려 죽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러나 북한의 유일한 협상 카드는 협박인데 바로 이 점이 달래주는 역할을 싫어하는 미국 사회,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에게 어려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팰러앨토=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김학준사장 기조연설▼
우리는 지금 새롭고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한국 국민과 이 지역 안보는 물론 세계가 어렵게 발전시켜 온 핵 확산 억제 노력에 위협이 되고 있다. 이 ‘한국의 위기’는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강조하고 싶다. 우리 누구도 자유롭고 번영하는 한반도에 전쟁이라는 유령이 찾아오는 것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적 해결과 북한과의 대화에 최우선의 중요성을 부여해야 한다.
다자간 협력의 중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주요국들은 이미 바람직한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위기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공동 보조를 취한다면 북핵 위기는 궁극적으로 외교를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 한국은 21세기의 새 대통령을 맞이한다. 새 대통령의 취임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새로운 추진력을 상징한다. 이 같은 변화의 시기에 열린 이번 포럼이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데 있어 매우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
▼포럼 참석자들▼
이홍구 前국무총리
로버트 스칼라피노 버클리대 석좌교수
진념 前경제부총리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하신문 칼럼니스트
한승주 고려대 총장서리
마이클 아마코스트 前주일미대사
유재건 민주당 의원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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