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헌 해명 의혹만 키웠다]5대 의문점

  • 입력 2003년 2월 16일 22시 36분


코멘트
“속타네”.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사진 왼쪽)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16일 강원 고성군 금강산콘도에서 대북 송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사장이 보충 설명을 하는 동안 기자단의 질문을 기다리던 정 회장은 목이 마른 듯 물을 마시고 있다.고성=연합
“속타네”.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사진 왼쪽)과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16일 강원 고성군 금강산콘도에서 대북 송금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 사장이 보충 설명을 하는 동안 기자단의 질문을 기다리던 정 회장은 목이 마른 듯 물을 마시고 있다.고성=연합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의 대(對)국민 성명에도 불구하고 대북 비밀송금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는 남북정상회담이 대북송금과는 관계가 없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했고 현대는 대북사업 독점권을 따기 위해 5억달러 송금이 불가피했다는 원론만을 반복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5억달러가 정상회담 성사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것이라고 말해 미묘한 뉘앙스를 남겼다. 현대상선이 북한으로 보낸 2억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3억달러의 출처와 언제 어떤 경로로 송금됐는지에 대한 해명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다. 또 산업은행 4000억원 대출 외압 의혹 및 국가정보원의 개입 경위 등도 해명되지 않았다.》

① 돈출처-전달시기-경로 못밝힐 이유 뭘까

▽3억달러 출처와 송금경위는〓현대가 2000년 북한에 보냈다고 밝힌 5억달러 가운데 현대상선의 2억달러 외에는 밝혀진 것이 없다. 정 회장은 대국민 성명 뒤 가진 일문일답에서도 여기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했다.

나머지 3억달러의 대북 송금은 언제 어떤 경로로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정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것이 대북사업 독점권의 대가였다는 정부와 현대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무엇인지 등의 의문점에 대해서는 정부도 현대도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았다. 이 돈의 출처가 어딘지도 불분명하다.

이런 상태에서 무조건 “국익을 위한 것이었으니 이해해달라”고 강변하는 것은 누가 봐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는 14일 “현대에 환전 편의를 제공하라고 검토 지시를 내렸을 뿐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현대건설과 전자의 돈이 송금됐는가’라는 질문에 “그 건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일부 금융가 소식통의 관측대로 현대건설이 1억5000만달러를 대북송금에 쓴 게 사실이라면 이는 일파만파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당시 현대건설은 극심한 자금난에 빠져 있었는데 그런 업체가 거액을 북한에 송금했다면 정상적인 경영활동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행위이기 때문이다.

②합의도 안된 사업 대가성 주장 납득안돼

▽정상회담의 대가성 여부〓임 특보는 “대북송금은 남북정상회담과 전혀 무관하다”면서 “다만 정부가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현대의 대북사업과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도 “엄청난 규모의 사회간접자본시설(SOC)과 기간산업 시설공사에는 남북당국의 보장이 절실하게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회장은 “대북송금은 7대 남북경제협력사업 독점권의 대가로 이루어졌으나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뉘앙스가 약간 다른 말을 했다.

③7대사업 대가라면서 왜 회담직전 송금

▽송금 시점 정상회담 시점과 일치=정 회장은 “북한과의 대북사업 합의서는 8월에 체결됐으나 북한이 그 전에 송금해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회장의 발언은 왜 하필 정상회담 직전에 송금했는지에 대한 해명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정황으로 볼 때 현대는 대북사업을 확실히 보장받기 위해 화해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북한에 정상회담 의사를 타진했고 박지원(朴智元)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송호경(宋浩景) 북한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의 만남을 주선한 것으로 보인다. 대북송금 시기를 급하게 정상회담 직전으로 잡은 것도 정상회담 성사를 확실히 지원하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대북송금과 정상회담이 무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④법 무시한 4000억대출… 외압없인 불가능

▽4000억원 대출외압 의혹〓대북송금 사건이 처음 불거진 것은 엄낙용(嚴洛鎔) 전 산업은행 총재가 “현대상선 김충식(金忠植) 사장이 ‘4000억원은 우리가 쓴 돈이 아니다. 정부가 대신 갚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하면서부터였다.

엄 전 총재는 “한광옥(韓光玉)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이근영(李瑾榮) 당시 산은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대출을 부탁했다”고도 말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듯 산업은행의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은 모든 법절차와 규정을 무시하며 이뤄진 것이어서 산은 자체의 판단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정부는 당시 대출을 심의한 박상배(朴相培) 부총재만 해임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지으려고 하고 있다.

실제 대출 압력을 행사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대출 결정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등 진상은 전혀 밝히지 않은 채 하수인만 처벌하려는 것이다.

⑤3억달러 보낼때는 환전편의 제공 없었나

▽국가정보원, 어디까지 개입했나〓임 특보는 환전편의 제공 사실만을 인정했다.

김 대통령이 시인했듯이 현대의 대북 송금은 실정법을 위반하며 이뤄진 것으로 정부당국의 조직적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국정원장이 이를 몰랐다고 한다면 이는 직무유기를 했거나 현대의 대북송금 문제를 처리한 다른 권력실세가 있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금융계에서는 국정원이 환전뿐만 아니라 비밀리에 국정원의 가차명계좌를 활용해 북한에 송금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보고 있다.

산업은행 4000억원 대출결정 과정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나 정부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승모기자 ysmo@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