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압박함으로써 외교적 노력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북-미 대화 재개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강조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주일 후면 취임하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측이 ‘미 언론 보도에 대해 곧바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노 당선자측의 한 핵심관계자는 “노 당선자의 북한핵 관련 기본입장은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미측이 공식적으로 통보해 온 것도 없고, 이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조율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사실 25일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를 기다리고 있는 과제는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미동맹 재조정,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 문제 등 덩치가 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대북 제재를 중심으로 하는 북핵 해법에 초점을 맞출 경우 북핵 문제 해결보다는 오히려 한미관계 조정이 더 시급한 현안이 될지도 모른다.
노 당선자는 또 13일 대북 지원에 대해 “퍼주기가 아니고 더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며 “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측이 식량지원도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과는 전혀 ‘감(感)’이 다른 접근법이다.
물론 뉴욕 타임스가 보도한 대북 제재가 곧바로 실현될 가능성은 낮기 때문에 당장 한미관계를 걱정해야 할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언론에 거론됐던 ‘맞춤형 봉쇄(tailored containment)’ 개념이 변형된 ‘맞춤형 제재(tailored sanction)’가 눈에 띄는 정도라는 것이다. 대북 제재와 대화의 중간선상에서 북한에 대한 압박을 최대화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도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이 대북 압박에 반대하고 있어서 미측이 이 방법을 구체화하려면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미측이 이처럼 북한의 ‘돈 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현대의 대북 송금이 북한 무기 구매 용도로 전용됐다는 미국 내 매파의 시각이 고려됐다는 관측도 있다.
한편으로는 애초부터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은 안 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강조함으로써 한국의 새 정부가 북한에 현금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못박으려는 의도도 없지 않아 보인다.
▼94년 北제재 방안은…▼
1993, 1994년 1차 한반도 핵위기 당시 미국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활동 검증에 비협조적인 북한을 제재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다.
94년 6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유엔 주재 미 대사가 공개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對)북한 제재 결의안(초안)의 골자는 한 달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의 무조건 이행을 확인할 것을 촉구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2단계에 걸친 제재조치를 발동한다는 것.
1단계 조치에는 △핵관련 기술 및 과학 협력 중단 △정규 민항을 제외한 비정규 항공기 이착륙 금지 △1500만달러에 달하는 유엔의 경제개발 원조 중단 △북한 외교관의 인원감축 및 여행제한 △강제적 무기금수 △문화 교육 등 각종 교류 금지 등이 포함됐고, 2단계는 평양과의 모든 재정거래를 차단해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욱 압박하는 조치였다. 1단계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2단계로 모든 재정거래 중단조치를 취해나갈 것임을 경고하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의 제재 결의안에는 북한이 NPT가 요구하는 핵안전협정 의무를 수용할 경우 러시아가 제의한 ‘한반도에 관한 국제안보회의(8자회담)’를 개최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으나 북측의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러한 미국의 제재방안은 유엔 안보리 차원의 대북 제재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랐기 때문.
학계의 한 관계자는 “1차 한반도 핵위기 때에도 대북 경제제재 움직임이 있었으나 안보리 결의안까지 가기가 쉽지 않아 사실상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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