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내용=한나라당이 당초 제출한 원안에선 ‘대북 뒷거래’라는 표현을 썼으나 이것이 ‘대북 비밀송금’ 또는 ‘대북 비밀지원’으로 바뀌었다.
또 수사 준비기간이 원안의 10일에서 20일로 늘어난 반면 전체 수사기간은 ‘최초 90일, 1차연장 60일, 2차연장 30일로 총 180일’에서 ‘최초 70일, 1차연장 30일, 2차연장 20일 등 총 120일’로 줄었다.
특검의 수사대상에는 △2000년 5월 현대건설이 싱가포르 지사를 통해 보낸 1억5000만달러 등 5억5000만달러를 북한에 보낸 건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해 비밀송금한 건 △2000년 7∼10월 현대전자 스코틀랜드 반도체 공장 매각대금 등 1억5000만달러 송금 건이 포함됐다.
그러나 법 2조 4항에 현대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의혹과 관련한 ‘청와대 국정원 금감원 등의 비리의혹 사건’도 수사 대상으로 규정돼 있어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관련된 모든 권력기관 및 인사에 대한 전방위적인 수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조항은 ‘비밀송금’ 외에 현대그룹의 대출과정 및 현대그룹에 대한 각종 특혜의혹과 관련한 권력기관의 여타 비리에 대해 무한대로 수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임동원(林東源) 전 외교안보통일특보, 박지원(朴智元) 전 비서실장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의 일정=대통령은 이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뒤 15일 이내에 공포 시행해야 하며 시행일로부터 5일 이내에 대한변호사협회에 특검 후보 추천을 의뢰해야 한다. 대한변협은 후보자 2명을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추천받은 날로부터 3일 이내에 이 중 1명을 임명하게 된다. 또 특검이 4명의 특별검사보 후보를 천거하면 대통령은 이 중 2명을 선택한다. 특검은 대검찰청과 경찰청 등으로부터 검사 3명, 공무원 15명을 파견지원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르면 3월 말부터 본격적인 특검 수사가 시작되고 7월 말 내지 8월 초면 수사가 종결될 전망이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정상회담 대가였나’가 핵심▼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의 수사 핵심은 송금 명목과 전달 경로, 그 과정에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송금의 목적도 수사 대상이 되기 때문에 정상회담 대가 가능성도 실체를 드러낼 전망이다.
▽대북 송금 명목 및 과정=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석상에서 당시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별보좌관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산업은행에서 대출 받은 2235억원을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북한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 돈은 7대 대북 경협사업에 대한 현대의 30년 독점사업권 보장 대가로 현대가 북한에 주기로 한 5억달러의 일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현대상선의 대출 경위나 관련자들의 증언에 비춰보면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국정원이 구체적으로 어떤 편의를 제공했는지에 대한 언급도 없다.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현대상선이 산은에서 정식 대출 심사가 필요 없는 당좌대월 형식으로 대출신청 이틀 만에 거액을 쉽게 빌린 것이 의혹 중의 하나. 대출 시점(6월 7일)보다 앞선 6월 5일 환전 편의 제공을 요청했다는 것도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다. 따라서 대북 송금의 진짜 이유는 현대의 대북 사업이 아니라 송금 직후인 6월 13일 이뤄진 남북정상회담의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
엄낙용(嚴洛鎔) 전 산은 총재가 “이근영(李瑾榮·현 금융감독위원장) 전 산은 총재에게서 한광옥(韓光玉)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현대상선에 대출 지시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국회에서 증언한 것이나 김충식(金忠植) 전 현대상선 사장이 “산은 대출금은 현대상선이 갚을 돈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정권 개입 여부와 3억달러의 행방=특검 수사는 북한에 건네진 돈의 성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순 경협자금이라면 송금 과정의 불법행위 문제로 끝나겠지만 정부가 다른 대가로 돈을 주면서 현대를 ‘창구’로 이용했다면 대출 및 전달 과정 전체의 문제로 번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당시 정권 최고위층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받은 당사자인 북한을 상대로 한 조사가 불가능한 데다 대북 송금이 국익(國益) 차원의 통치행위였는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거세질 수도 있다. 수사가 순풍에 돛을 단 듯 순항하기보다는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관측인 셈이다.
현대가 북한에 주기로 약속한 5억달러 가운데 나머지 3억달러가 언제, 어떻게 전달됐는지도 밝혀져야 할 주요 의혹 사항이다. 이 과정에서 돈의 일부가 정치권 등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 사실이 드러나면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수사유보로 또 이미지 먹칠" 탄식▼
‘현대상선의 대북 비밀송금 사건’ 특별검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수사유보’ 결정을 내렸던 검찰은 특검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검찰 일각에선 “예견됐던 상황”이라며 특검수사가 검찰의 이미지에 미칠 부정적 영향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번 특검은 검찰 수사를 거치지 않은 사건을 처음부터 돌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종전의 특검과는 크게 다르다. ‘맨 땅’에 바로 부딪치며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놓여있는 것.
이에 따라 특검이 수사 초반부터 난관에 부닥칠 가능성이 높다. ‘이용호(李容湖)게이트’ 재수사 당시 차정일(車正一) 특검팀은 검찰로부터 이씨의 자금 거래 명세를 넘겨받고도 계좌 추적에만 30일 이상 매달린 적이 있다. 이번 수사는 계좌 추적을 벌여 기초 수사자료를 확보해야 다음 단계의 수사로 넘어갈 수 있는 데다 해외계좌 등과 연결돼 추적도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현대라는 대기업의 자금 흐름을 파악한 뒤 의심가는 돈의 흐름에 대해 일일이 입출금 경위를 파악하는 데에만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물론 자금추적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또는 리베이트 명목의 자금줄을 캐기 시작하면 생각하지 못한 대어를 낚을 수도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초반에 전 정권의 대북 자금 관련 의혹에 대해 수사의 칼날을 댄다는 점도 이번 수사의 특징. 전 정부의 위법이나 불투명한 정책 집행의 문제가 불거지면 ‘과거 청산’이라는 뜻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 특검제를 전격 수용한 검찰이 검사 파견 문제 등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번 특검이 안고있는 어려움 중의 하나. 또 직전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층 등을 상대로 수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고도의 정책적인 판단까지 필요해 특검 후보를 고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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