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첫 경제팀은 첩첩이 밀려오는 ‘삼각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27일 돛을 올렸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를 수장(首長)으로 하는 새 경제팀은 △경기 활성화와 물가 안정 △성장과 분배 △국제사회의 개방 확대 요구와 국내 취약산업 보호라는 서로 조화하기 쉽지 않은 정책 과제를 안고 있다.
이 같은 상반된 과제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면 한국경제호(號)는 ‘전복 위기’에 놓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특히 최근 한국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각종 대내외 ‘악재’를 감안하면 경제를 둘러싼 불안을 가급적 빨리 해소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안고 있다.
▽경기 활성화와 물가 안정=내수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성장 축을 수출과 투자로 바꾸었으나 올 들어서는 이마저 ‘빨간 불’이 들어오고 있다.
세계 경제의 회복이 더디자 수출업계에서는 올해 수출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36.9%)이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32.8%)보다 많다.
또 1월 설비투자증감률은 17개월 만에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가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임금과 부동산가격을 포함한 물가가 오르는 부작용이 예상되는 데다 마땅한 정책수단도 없다.
경제 위축이 주로 미국-이라크전쟁과 북한 핵문제 등 경제 외적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금리인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재정확대는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늘어난 국가 부채 때문에 여력이 없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黃仁星) 수석연구원은 “정부는 위기에 대한 사전 대비와 조기경보 기능을 강화하면서 소비자와 기업의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장과 분배=노 대통령은 잠재성장률을 7%로 끌어올리면서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분배구조도 개선하는 등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하겠다고 약속해왔다.
이 같은 방향에는 거의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구체적으로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이 현재의 경제제도와 대외개방 수준을 유지하면 앞으로 10년간 잠재성장률이 4%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또 낙관적으로 가정해도 잠재성장률은 5%대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더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하면서 내놓은 12대 국정과제를 보면 새 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나 경제력 집중 해소에 치우칠 가능성도 크다. 그동안 논란이 된 ‘재벌’개혁 방안은 총망라된 반면 규제완화 방안 등은 구체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세대 정창영(鄭暢泳·경제학) 교수는 “경제력을 넘어서는 복지정책은 재정부담 때문에 장기적으로 지속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형평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분배나 형평성을 무시한 성장 일변도의 정책도 사회불안을 야기해 성장의 기반을 무너뜨린다”며 “새 경제팀은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방 확대와 취약산업 보호=최근 국제 무역 통상질서는 격변기를 맞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UR)보다 개방폭이 훨씬 크고 근본적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2004년 말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쌀시장 개방 유예협상도 이때까지 끝내야 한다.
또 이 같은 세계무역기구(WTO) 질서와는 별개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통한 경제블록화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불안을 느낀 농민들은 벌써부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법률 의료 교육 문화 등 서비스시장 개방 논의가 본격화하면 이해집단의 반발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최낙균(崔洛均) 무역투자정책실장은 “개방을 확대하지 않으면 수출을 늘릴 수도 없고 동북아 경제 중심이 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면서 “새 경제팀은 해당 산업구조조정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정부가 벼랑 끝에 몰려 개방을 받아들이면 이해집단의 반발과 해당 산업의 피해가 훨씬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광암기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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