本社 김학준 사장 '北核' 국제회의를 보고…

  • 입력 2003년 2월 28일 18시 36분


김학준 사장
김학준 사장
동아일보사 21세기평화연구소는 지난 2주 사이 미국과 일본에서 각각 ‘북한 핵위기’에 관한 국제학술회의를 한 차례씩 열었다. 미국에서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와 5개국 회의를, 일본에서는 아사히신문의 아시아네트워크와 3개국 회의를 열었다.

첫째, 북한의 핵개발이 과연 어느 수준에 와 있느냐에 대해서이다. 이 대단히 중요한 물음에 대한 결정적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아직은 위험 수위를 넘지 않았으나 위험 수위에 접근하고 있어서 이대로 내버려두면 아마도 6개월이나 1년 이내에 위험 수위를 넘게 된다, 외교적으로 심각한 문제이기는 하나 군사적 위기라고 말할 수는 없는 수준이다 등 현황 파악이 여러 갈래였다. 굳이 단순화시켜 나눠본다면 미국 쪽은 위기라고 보는 반면 중국 쪽은 훨씬 덜 심각하게 보는 경향을 나타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99년 핵개발 장소로 의심되는 북한의 금창리 지하시설을 시찰한 뒤 “그것은 커다란 텅 빈 터널이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던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조정관 윌리엄 페리의 견해이다. 그러한 결론에서 북한에 대해 국가승인과 경제원조 등 이른바 당근 위주의 외교적 해결책을 제시했던 그가 스탠퍼드 회의에서는 오늘날의 상황이 4년 전의 상황에 비해 훨씬 더 심각해졌다고 발언한 점이다. 당시에는 북한이 농축우라늄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핵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솔직히 시인한 것이다.

둘째, 북한이 핵개발에 이처럼 끈질기게 매달리는 의도가 무엇이냐에 대해서이다. 우선 1차적으로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유도하기 위해, 2차적으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방세계를 상대로 하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말하자면 확실한 외교카드를 확보하려고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해석이 다수설이었다. 반면 김정일은 북한을 반드시 핵으로 무장된 국가로 만들어야겠다는 핵무기화의 결심을 굳히고 있다는 소수의견도 제시됐다.

셋째, 그러면 북한의 핵개발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에 대해서이다. ‘외교카드 설’에 따르면 북한이 바라는 것, 예컨대 불가침조약과 국가승인 및 경제원조(특히 에너지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시켜 줄 정도의 중유 및 전기 공급)를 하면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할 것이므로 어느 누구보다도 미국이 북한의 요구에 맞춰 서둘러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핵무기화 설’은 북한에 그 어떤 것들을 준다 해도 김정일은 반드시 핵무기를 손에 넣을 것인 만큼 협상은 결국 김정일에게 핵무기를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금과 시간을 주는 것으로 끝날 것이라고 비관한다. 서방세계로부터 무얼 얻었다고 해도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하고 난 뒤의 북한에는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가난과 낙후, 국제적으로는 무시와 천대, 심지어는 보복 같은 것이 예견될 뿐인데, 그리하여 김정일 정권의 안정적 존속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데, 자신의 위기를 내다보면서 김정일이 핵개발을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에 남은 선택은 셋밖에 없다. 선제공격에 의한 북한 핵시설의 파괴, 김정일 체제의 교체, 핵무장한 북한과의 불안한 공존 등이다. 그러나 첫 번째 선택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두 번째 선택, 이른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는 얼핏 생각하면 그럴 듯하게 들린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핵개발을 추진하던 나라들이 그것을 포기한 경우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에서 보여졌듯, 거의 전부가 레짐 체인지의 결과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레짐 체인지는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세 번째 선택을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것은 너무나 불안하고 동아시아에 핵 개발의 확산, 이른바 핵의 도미노현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비록 매우 지루하고 더디고 따라서 피곤할 수 있다고 해도 외교적 협상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94년의 제네바합의를 부활시키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활성화시키며, 그 전에 어떻게 해서든 제2의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그 과정을 시작하기 위해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북한측이 신뢰하는 페리 전 북한조정관을 대통령특사로 평양에 보내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고(故)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협상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가 협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편으로 북한 역시 핵개발에 대한 집념을 버리고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관련국들과의 다자(多者)협상에 응해야 하며,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비핵화 실현에 이바지해야 한다.

김학준 동아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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