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 나 보좌관은 일부 언론에 자신의 대북 접촉 사실이 보도된 데 대해 “북한측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접촉대상과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간단히 보고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 보도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는지 “어떤 내용이냐”고 물었고, “남북 관계는 투명하게 하는 게 옳다. 나 보좌관이 직접 정식으로 (언론에) 설명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송경희(宋敬熙) 대변인도 “오후 3시로 예정된 언론 브리핑에 나서달라”고 요청했으나 나 보좌관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거부했다.
오전 11시 송 대변인이 브리핑에 나섰으나 ‘나 보좌관이 대북 접촉을 한 사실이 있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하지 못했다.
―나 보좌관의 대북 접촉은 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인가.
“아닌 것으로 안다. 내가 전해들은 것은 당시 나 보좌관이 베이징에 있었고 누군가를 만난 것은 사실이라는 것이다.”
―새 정부가 내세운 게 대북 정책의 투명성인데 아무 설명이 없는 것은 문제 아닌가.
“나 보좌관이 ‘내가 직접 설명하는 것은 국가이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다’라고 했다.”
―전(前) 정부의 임무였나, 아니면 현 정부의 임무였나.
“모르겠다.”
―(당시 주 영국 대사였던) 현직 대사가 반국가단체 인사를 만났는데 설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 문제에 대한 언론 발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대북 접촉 전에 노 대통령을 면담했는데 그때 임무를 받은 것 아닌가.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설명을 못하겠다고 하니 오히려 추측보도가 난무하는 것 아닌가.
“내가 새벽부터 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서 ‘오후에 브리핑을 하는 게 좋겠다’고 요청했다. 그러나 어렵다고 했다. 고도의 전문적이고 실무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오후 3시 정례 브리핑에서도 송 대변인은 먼저 “외교와 국방에 관한 문제는 모든 것을 밝힐 수 없다”고 못박은 뒤 “2개의 질문만 받겠다”며 질문을 아예 제한해 버렸다.
나 보좌관 역시 그 직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확인해 줄 수 없다. 미안하다. 전화를 끊겠다”며 입을 닫았다.
청와대가 이처럼 함구로 일관하는 데다 나 보좌관의 지난달 행적도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나 보좌관은 지난달 9일 갑자기 귀국해 다음날 당시 노 대통령당선자를 면담했는데, 귀국 이유부터 불투명했다. 당시 나 보좌관은 “개인 사정으로 귀국한 게 아니다.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장관의 지시를 받고 들어왔다. 내가 하는 일이 밝혀지면 나랏일에도 피해가 있을 수 있다. 국익과 직결되는 일이다”고 설명해 모종의 중요한 임무 때문에 귀국했음을 시사했었다. 또 대통령직인수위 고위 관계자는 “노 당선자가 불러서 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었다.
나 보좌관은 17일 두 번째로 노 당선자를 만났으며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측과 접촉했다. 사흘 뒤인 23일 노 당선자측은 나 보좌관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내정한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에 그의 대북 접촉이 노 당선자와의 사전 교감 아래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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