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이 같은 내정 간섭성 발언은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이후 간혹 있다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16대 대선이 있었던 지난해부터 부쩍 잦아졌다.
▽‘민족공조’와 ‘남남분열’ 동시 겨냥=북한은 지난해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를 ‘남북간 분열과 대결을 추구하는 반통일세력’이라고 집중 비판했다. 이 전 총재가 지난해 1월 미국을 방문해 “집권하면 북측에 재래식 무기 감축을 요구하겠다”고 말하는 등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호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데 대한 노골적인 반발이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교수는 “북한이 한나라당을 친미적이고 반민족적이라고 비난하면서 남한의 국내정치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셈”이라며 “한미동맹보다 민족공조를 우선하는 여론을 확산시키려는 전술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이번 특검 문제는 북한의 그런 일반적인 대남 전술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있다.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을 지낸 이종석(李鍾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특검을 통해 북한의 대남 접촉선이 모두 공개되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에게까지 치명적인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에 북측이 다른 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뿐”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의 정략적 대응=남한 정치 현안에 대한 북측의 발언에 대해 여야 모두 ‘내정간섭’이라고 불쾌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북한 핵 특위’의 조순승(趙淳昇) 위원장은 “북한의 내정 간섭성 발언은 야당을 경직시키고, 여당의 입지마저 좁히는 부작용만 일으킨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 의원도 “남북교류론자들의 입지를 축소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이 정말로 교류협력이 깊어지길 원한다면 그런 발언이나 행동을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동안 이 같은 인식을 공유하면서도초당적 대응보다 당리당략적 접근으로 일관해왔다.
지난해 대선 때 한나라당은 “북한과 남한 집권 여당의 목소리가 어쩌면 이렇게 똑같으냐”고 공격하며 ‘보수표 모으기’에 활용했고, 민주당은 한나라당을 수구 냉전 세력으로 몰며 “전쟁이냐, 평화냐”를 선거문구로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이 남남갈등을 부추기는 북한의 전술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정부의 불감증=정부도 북한의 내정 간섭성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하거나 유감을 표명한 적이 거의 없다. 주무부처인 통일부는 이런 발언이 있을 때마다 관련 내용을 복사해 취재진에게 배포할 뿐,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반면 북측은 2000년 12월 당시 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의 북한 관련 언론 인터뷰 내용을 공식적으로 문제삼아 장 총재가 결국 해임되도록 했고, 지난해 5월엔 당시 최성홍(崔成泓) 외교통상부장관의 방미 발언을 이유로 남북경협추진위원회에 불참하기도 했다. 제 교수는 “정부의 이런 대북 불감증은 ‘남한의 건전한 보수세력’마저도 한반도에서 고립감을 느끼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유재건(柳在乾) 의원은 “정부는 북한도 자신들의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점을 명심하고, 북측 발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통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조웅규(曺雄奎) 의원은 “정부와 여권내 일부 정치인들이 남북간 현안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북측의 대남 정치개입 여지만 넓혀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북한이 남한 정치 현안에 대해 한나라당 등을 비난한 사례 | ||
일자 | 언급 내용 | 비고 |
2003. 3. 4 | (대북 송금문제에 대한 한나라당의) 특검제 도입 강행은 현 북남관계를 대결로 돌아가게 만들고 누구에게도 이롭지 못한 동결상태에로 몰아넣게 될 것이다. | 조국평화 통일위원회 (조평통) 보도 |
2. 2 | 남조선의 한나라당과 일부 극우 보수 반통일 세력들은 우리(북한)와 현대 사이의 경제 협력을 ‘대북 비밀 자금지원 의혹’이라고 하면서 순조롭게 나아가는 북남관계에 제동을 거는 불순한 놀음을 벌이고 있다. |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 대변인 성명 |
1.16 | (북한에 핵개발 포기를 촉구한) 한나라당 대변인 논평 (1월 15일자)은 핵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망발이다. | 조평통 보도 |
2002.12.21 | 남조선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 이회창이 패배한 것은 온 민족의 염원이 반영된 6·15 공동선언을 반대하고 반공화국(반북) 대결을 고취하는 세력은 참패를 면치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
12. 2 | 한나라당이 (의정부의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 사건에 대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 적절한 조치니 환영이니 하고 앞장서 떠드는 것은 친미사대 매국적 본질을 그대로 드러내놓은 것이다 | 조평통 보도 |
8.25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8월 24일 제시한) 한반도 평화정착 구상은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근본 문제들은 외면하고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을 들고 나와 조선반도에서 새로운 분쟁의 씨를 심어보려는 전쟁정책이다 | 조평통 보도 |
7.24 | (서해교전 사태에 대한 북한의 사과 등을 요구한 한나라당 서청원 대표의 국회 대표 연설은) 우리(북한)를 걸고 악의에 찬 비방을 늘어놓은 것으로 절대로 간과할 수 없다. | 조선중앙통신 논평 |
6.13 |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북남 대결과 전쟁, 민족 분열을 추구하는 반통일분자이다. | 조평통 고발장 |
2. 3 | (1월 방미 중 반통일적 발언을 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권력의 자리에 들어앉으면 남북화해와 단합이 아니라 동족 사이의 전쟁 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 사죄하지 않는 한 상종하지 않을 것이다. | 조평통 대변인 담화 |
2001. 9. 6 |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 건의안을 가결시킨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이행을 가로막고 남북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리려는 추악한 반통일적 정체를 남김없이 드러냈다. | 평양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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