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人事파문 청와대-검찰 줄다리기

  • 입력 2003년 3월 7일 18시 37분


《청와대와 검찰이 검찰 인사를 둘러싸고 마주 달리다 충돌 직전 조금씩 비켜섰다. 청와대는 7일 검사들에게 징계를 경고했다가 한 발짝 물러섰고 검찰도 집단 행동의 수위를 낮췄다. 그러나 인사 원칙과 방식 등에 대해서는 양측 모두 여전히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검찰 인사 파동은 여전히 언제 활화산처럼 타오를지 모르는 형국이다. 청와대와 검찰의 분위기 및 입장을 살펴본다.》

▼단호한 청와대▼

7일 오전 검찰의 집단 인사반발에 “징계도 불사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던 청와대는 오후 들어 “지금은 징계를 내릴 만한 상황은 아니다”며 검찰조직 전체와의 정면충돌은 피하려는 모습이었다.

오후에 직접 브리핑에 나선 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평검사들은 이번 개혁 방향을 대단히 환영하고 있다.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그런 것 같다”며 검찰의 반발 움직임을 ‘소수의 검찰 간부’로 국한시켰다.

하지만 그는 “검찰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전제하고 “공직자인 검사들이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집단 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처신을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선을 그었다. 나아가 “윗 기수부터 차례로 승진하는 경직된 서열주의는 탈피해야 하고, 조직 내에서 신망이 높은 청렴 강직한 인사들을 발탁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뜻이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청와대는 검찰의 반발 움직임에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한 핵심 관계자는 “검찰의 반발은 항명이다. 과거에 집단 항명하다가 옷 벗은 적도 있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당초 노 대통령은 더 파격적으로 인사를 하려 했지만,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이 그래도 안정적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해 3일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청와대가 검찰 지휘부의 대폭 교체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집권 초기가 아니면 검찰조직의 대수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 대통령민정수석은 “이번 검찰 인사의 방향은 오래전부터 논의되고 구상돼 온 것이다”며 “그에 따라 법무부 장·차관 인사가 이뤄졌고, 이번 인사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설명했다.

대한변협 도두형(陶斗亨) 공보이사도 “검찰 간부에 대한 쇄신 인사는 그동안 검찰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았기 때문인데, 이에 반발한다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더 상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개혁은 권력을 남용해 온 과오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라며 “검찰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화난 검찰▼

검찰은 7일 오전 청와대가 ‘수뇌부 징계’ 등을 내세우며 강공으로 나오자 격앙했으나 오후 늦게 강금실(康錦實) 법무부장관의 ‘인사 재검토’ 발표가 나오면서 다소 수그러드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각 일선 검찰청의 평검사들은 검찰 인사권 자체를 검찰총장에게 이양하라고 촉구하는 등 공세 수위를 여전히 낮추지 않았다.

대검 간부들은 이날 오전 김각영(金珏泳) 검찰총장이 강 장관을 면담한 직후 검찰총장실에 모여 40여분간 대책을 논의했으며, 대검 차장실로 옮겨 숙의를 거듭했다. 대검 과장급 간부들과 서울지검 등 전국 20여개 일선 검찰청의 부장급 검사 및 평검사들도 직급별로 모임을 갖고 대응책 마련에 골몰했다. 모임에 참석한 한 검사는 “분위기가 전례 없이 정말 험악했으나 강 장관의 얘기가 전해지면서 분위기가 약간 누그러졌다”고 전했다.

검사들의 돌출 행동도 잇따랐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이날 검찰 전산망에 ‘독립된 검찰에서 일하고 싶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검찰의 핵심 요구조건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 청와대가 인사권을 이용해 검찰을 장악하려 해서는 안 되며 검찰인사위원회를 통해 인사의 객관성을 높이자는 것으로 압축된다.

그러나 검찰 간부들과 평검사들의 요구수준은 크게 다르다. 부장급 이상 검찰 간부들은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과 관행대로 협의를 거쳐 인사를 단행하라는 정도지만 평검사들은 인사권을 아예 검찰로 넘기라는 주장이다.

고등검사장 승진안에 대한 검찰의 불만은 터질 듯 더 고조됐다. 서열 파괴도 문제지만 법무부가 고검장 승진자로 통보한 J, K, L, Y검사장이 과연 모두 개혁적이고 능력이 있느냐는 것.

일부 간부들 사이에서는 “청와대의 숨은 의도는 검찰의 ‘인적 청산’이며 이에 맞서 간부들이 ‘물먹더라도’ 끝까지 버티고 나가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들이 버틸 경우 검찰 수뇌부를 물갈이하려는 청와대의 의도는 상당 부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주요 포스트에 발탁인사를 함으로써 개혁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청와대와 비주류로 전락하는 검찰 간부들간의 지루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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