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영수회담 왜 미뤘나]특검제 거부 들러리 우려

  • 입력 2003년 3월 11일 00시 06분


4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지역대표 선출 방법 등 당 개혁안 논의를 위해 열렸던 연석회의에서 참석자들의 강경한 분위기에 따라 ‘특검제 협상 불가 결의문’이 채택됐다. 이어 소집된 긴급 주요당직자 회의에서는 “확정된 대통령의 당사 방문일정을 일방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예우에 맞지 않는다”는 신중론도 제기됐으나 이 역시 다수의 반대 목소리에 묻혔다.

또 대표실과 사무총장실 대변인실 등에는 “영수회담이 특검제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모양 갖추기에 이용되는 것 아니냐”는 내용의 전화가 쇄도했다.

한 당직자는 “솔직히 말해 노 대통령이 특검제 문제는 입에도 안 올리겠다고 하면 영수회담을 연기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특검제 문제는 더 이상 한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는 기류가 워낙 완강하다보니 미리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11일 오전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영수회담 대응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노 대통령의 방문을 하루 이틀 늦추는 방안과 함께 예정대로 회담을 하되 특검제 논의 배제를 사전에 약속 받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영수회담 ‘연기소동’은 대선 패배 후 쇄신안을 둘러싸고 당의 분란이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들어선 현 임시지도부가 지도력의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박 대행의 경우 그간 여러 차례에 걸쳐 “노무현 정부에 대해 비판할 것은 비판하되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해서는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강조해온 터라 북핵 사태와 경제 위기 같은 긴박한 국가적 문제들을 눈앞에 두고 당 분위기에 편승해 이미 합의한 영수회담의 연기를 결정한 것은 지나치게 경솔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초선 의원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지도부가 사실상 아무 힘이 없는 데다 혹시라도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자신들에게 튈지도 모르는 불똥을 먼저 걱정한 것 아니겠느냐”며 “이러고도 어떻게 원내 과반수 제1당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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