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청와대는 이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하면서 민주당에는 특검 도입을 전제로 한 수정안 마련을, 한나라당에는 협상에 응할 것을 강하게 압박했다. 일단은 거부권 행사 시한인 15일 밤12시까지는 여야 협상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여야 협상 타결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고 이날 저녁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를 소집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지, 아니면 특검법안을 그대로 수용할 것인지를 놓고 집중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무한정쟁에 빠질 수 있다는 신중론과 함께 민주당이 합리적인 수정안을 내놓는다면 거부권을 행사한 뒤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회의를 주재한 노 대통령도 “요즘 자면서도 생각하고 자다가 깨서도 생각하고 그런다”며 고심을 거듭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유인태(柳寅泰) 정무수석비서관은 회의 후 “민주당 내에서 무조건 특검 거부가 다수였는데, 14일 의원총회에서 특검 도입을 전제로 한 수정안을 추인한다면 한나라당도 (재협상을) 거부할 명분이 없을 것이다”며 대야(對野) 협상 성사를 위한 민주당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청와대는 여야간 협상이 진행될 경우에는 14일 오후 3시로 예정돼 있는 국무회의 시간을 늦춰서라도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혀 거부권 행사에 따른 부담감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다.
▽민주당=13일 확대간부회의에서 “대북 송금 특검법에 반대한다는 게 당론이나 유연성을 갖고 협상에 나선다”는 방침을 정리했다. 특검법에 대한 ‘무조건 반대’에서 ‘조건부 수용’ 쪽으로 기류가 바뀐 것이다.
내부적으로 협상안도 마련 중이다. 협상안 골격은 크게 세 가지. 4개월로 돼 있는 수사 기간을 2개월로 단축하고 특검 대상에 북측과 관련된 부분은 제외하며 수사기밀 유출시 처벌조항을 신설한다는 내용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협상안을 갖고 양당 원내총무 라인 외에도 이상수(李相洙) 사무총장과 정세균(丁世均) 정책위의장, 필요하면 정대철(鄭大哲) 대표까지 나서 한나라당과 다각적인 협상을 벌여 나가기로 했다.
이는 특검을 피할 수 없다면 실리라도 챙기겠다는 판단에서다. 또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여론 지지를 얻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정 대표는 “거부권 시한 전에 합의를 도출한다는 것이 당의 방침이다. 안되면 한나라당이 특검법 공포 후 내용을 수정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한다. 이게 마지노선이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당 일각에서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검찰이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이 13일 발표한 ‘당의 입장’에서 특검법 시행 후 일단의 여야 협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는 “특검법은 수정할 수 없다”는 기존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특검법 수용의 명분을 주기 위해 짜낸 고육책의 성격이 짙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예를 들어 남북 관계에 심각한 훼손을 줄 수 있는 사안 등에 대해서는 추후 여야 협의를 통해 수정안을 마련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일단 노 대통령의 체면을 살려줌으로써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게 최대 목표다. 그 다음의 문제는 그때 가서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한나라당이 ‘최소한의 타협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은 노 대통령이 특검법을 거부했을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나라당은 특검법이 거부됐을 경우 △시국강연회 등 장외투쟁 전개 △거부권 행사에 대한 헌법소원 △장관들의 해임건의안 추진 △대통령 탄핵소추 발의 같은 강경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지만 경제 및 북한 핵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실효성이 별로 없고 오히려 비난만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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