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특히 당사자인 1급 간부들은 분노를 넘어 심한 배신감마저 토로했다.
행정자치부의 1급 간부 A씨는 “공무원으로서 국가에 충성한 대가가 고작 이거냐”며 “내쫓는 마당에 따뜻한 말로 위로는 못해줄망정 비아냥거리는 식의 말로 뒤통수까지 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행자부의 다른 1급 간부 B씨도 “집에 가서 마누라하고 놀라는 것이 무슨 말이냐”며 “사표를 내라는 것도 억울한데 30년 가까이 쌓아 온 공직자로서의 자긍심마저 송두리째 뽑아버리면 어떡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양수산부의 C과장은 “국가를 위해 평생을 보낸 분들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해야 하느냐”며 “적어도 인사보좌관 정도라면 남의 가슴에 비수를 꽂을 수 있는 말은 삼가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 보좌관의 말이 새 정부의 인사 방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새 정부 출범 후 청와대와 정부는 줄곧 다면평가 등을 활용해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 온 고시 기수나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를 타파하고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 보좌관은 1급 이상 공무원들의 진퇴를 ‘복권’과 같은 운으로 돌림으로써 이 같은 방침을 무색케 하고 있다.
행자부 간부 D씨는 “1급 간부들의 운명을 시대적 흐름인 운에 맡기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대통령선거 때 특정 후보에게 줄을 서라는 것과 같다”며 “인사 보좌관의 말을 들으면 능력 위주의 인사를 하겠다는 새 정부의 인사방침이 제대로 지켜질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E국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런 식으로 공무원 조직을 흔드는데 이번에는 너무 심한 것 같다”며 “인사보좌관의 말은 직업공무원제의 기본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대통령 “鄭보좌관 발언 우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20일 ‘1급이면 공무원으로 다한 것 아니냐’는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의 발언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송경희(宋敬熙) 청와대 대변인은 “분명한 것은 노 대통령이 (1급에 대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지시하지 않았다. 정 보좌관의 발언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미에 유머를 섞어 한 건데 크게 보도됐다. 그 점에 대해 노 대통령이 우려를 표시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에서 “청와대가 1급 인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데…”라며 정 보좌관에게 발언 경위 등을 물었다고 송 대변인은 전했다.
당사자인 정 보좌관은 기자들에게 “대통령에게 꾸지람을 들었다고 봐야죠”라고 말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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