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20일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시작됨으로써 국제정세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었다.
이런 가운데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과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는 이날 동아일보사 21층 강당에서 ‘북한과의 핵 대립: 오늘날에 있어 1994년 위기의 교훈’을 주제로 세미나를 공동개최하고 북핵 위기 대처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1994년 북핵 위기 당시에 활동했던 한미 양국의 정부 관리들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첫 발표에 나선 한승주(韓昇洲·고려대 교수) 전 외무부장관은 “94년과는 달리 폐연료봉을 추출한 현재의 상황이 더 큰 위기”라며 “조만간 북한이 핵 보유국이라고 선언하거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는 “94년 당시 미국이 한국정부보다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문제 해결을 위한 결정이 쉽게 이뤄졌다”며 “그러나 지금은 한미동맹 관계가 약화되고, 북한의 정치상황도 달라지는 등 문제해결이 더 어려워졌다”고 전망했다.
미국측 북-미협상 대표로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낸 로버트 갈루치(조지타운대 교수) 박사는 “94년의 위기에서 얻은 교훈은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협상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한 현 시점에서 또다시 협상을 해야 하는 것은 협상을 안 하는 것보다는 결과가 좋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종욱(鄭鍾旭·아주대 교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러시아와 중국 등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요하며, 특히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중국과의 협조관계가 북핵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 대사로 부임했을 당시 미 고위층의 북핵 정책 부재 사실을 알게 된 뒤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며 “유엔에서 대북 제재조치를 논의하던 시점에도 한국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핵확산 방지도 중요하지만 한반도와 동북아지역 안보의 불안정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북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군사적 활동을 고려한다면 한국뿐 아니라 지역의 동맹국들과 함께 논의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대니얼 포네맨 전 백악관 핵비확산 및 수출통제 대통령특별보좌관은 “미국은 94년 핵 위기시 북한 핵개발을 저지함으로써 한반도의 핵확산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지나치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시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활동뿐아니라 한반도 무력 증강 배치 및 경제제재 움직임 등으로 당근과 채찍을 함께 동원했다”며 “모든 방안이 실패한다면 경제제재나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측에 암시하는 동시에 북한이 우리의 목표에 부합한다면 당근을 준다는 회유정책을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는 “북핵 위기 해결에 필수적인 것은 한미 공조”라고 강조하고 “한미간의 군사 민간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94년 제네바 합의 주역들 한자리에▼
북핵 위기 대처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세미나는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한미 양국의 정책 결정을 주도했던 주역들의 ‘상봉장’과 같았다.
로버트 갈루치 박사는 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 대사와 함께 미국측 대표로 북한 강석주(姜錫柱) 외무성 부상을 상대로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낸 인물. 또 대니얼 포네맨 전 대통령특별보좌관은 백악관에서 북핵 문제를 담당했고,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는 한국정부와 공조체제를 유지했다.
한승주(韓昇洲) 전 외무부장관과 정종욱(鄭鍾旭)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당시 정부의 북핵 정책 결정과 한미간의 협의를 진행한 주역들이다.
정 전 수석은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유지하고 이행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의 하나로 최근 이를 무용지물이라고 하는 지적을 들을 때마다 굉장히 슬픈 마음이 든다”며 “기본합의서가 이상적인 합의서가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협상이 어려운 은둔국가인 북한을 상대로 얻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갈루치 박사는 “기본합의서가 아니었다면 북한은 적어도 100기 이상의 핵무기를 개발했고 매년 30기 이상을 생산할 능력을 보유했을 것”이라며 “94년 핵 협상과 제네바 기본합의서가 도덕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포네맨 전 특별보좌관은 “94년 핵위기 때 우리의 목표는 장기적인 해결을 위한 방향 제시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경원(金瓊元) 전 주미대사는 “당시 제네바 합의를 만들어낸 북측 대표도 참석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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