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는 경기고를 나와 민국일보에서 신문기자를 하다가 홍익대 신문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경향신문 외신부장 미국특파원 편집국장을 지냈고 조사국장으로 재직 중 80년 6월 신군부에 의해 해직됐다. 83년 BBC영어연구원을 설립해 원장으로 재직해 왔으며 98년 한국언론연구원장과 한국언론재단 부이사장을 지냈다.
이날 이사회에서는 이른바 ‘국민 추천’을 받은 46명 중에서 최종 후보로 꼽힌 정연주(鄭淵珠)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성유보(成裕普)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 황규환(黃圭煥) 스카이라이프 사장, 황정태(黃正泰) KBS 이사 등 5명을 두고 표결이 벌어졌으며 서씨는 5차례의 표결 끝에 과반수를 얻었다. 표결에는 사장 후보로 추천받은 황 이사를 제외하고 10명이 참여했다. 이에 앞서 KBS 노조가 사장 후보 추천을 위해 사내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최동호 이형모 전 KBS 부사장과 황 사장, 성 이사장 등이 후보로 꼽혔다. 서씨는 이 조사에서 추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KBS 노조는 이번 이사회의 결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KBS 노조는 이날 KBS 본관에서 열린 이사회가 끝난 직후 “이번 사장 인선은 공영 방송의 독립을 훼손한 조치로 서씨의 사장 취임 반대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조는 KBS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서씨가 사장으로 선임된 데 대해 분노와 당혹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KBS 노조가 서씨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는 세 가지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의 고문을 지내 정치적 독립성에 문제가 있으며 △노 후보 후원회장을 지낸 이기명씨의 고종사촌으로 정실인사 의구심이 있고 △78년 ‘언론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 사건’에 연루됐다는 등 ‘전력’에 문제가 있어 공영방송 KBS의 자존심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명관 이사장은 이날 결정에 대해 “이사들이 여러 차례 표결로 결정했으며 정권의 입김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가에서는 한 달 전부터 ‘서씨 내정설’이 흘러나온 데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뒤 “KBS 사장은 내 맘 속에 있다”고 밝혔던 점으로 미뤄 이사회 결정의 ‘순수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KBS 김영삼(金泳三) 노조위원장은 “21일 밤 노조 간부들과 지 이사장 자택으로 가서 서씨에 대한 ‘3불가론’을 밝혔으나 지 이사장이 ‘이미 늦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했던 점으로 미뤄 정권의 압력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지 이사장은 이사회가 열리기 전날인 21일 문화관광부 고위간부를 만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에 대해 지 이사장은 “‘일본문화관’ 건립에 관해 대화했을 뿐 KBS 사장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씨의 법적 임기는 박권상(朴權相)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5월22일까지다. 특히 현 KBS 이사회도 5월15일 임기가 만료되므로 서씨는 두 달 뒤 새 이사진의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노조는 취임 거부 운동에 이어 재신임 때도 반대운동을 펼치겠다고 벼르고 있다.
방송계의 한 인사는 KBS 이사회의 결정에 대해 “MBC 사장 선임시 의외의 결과에 당황한 정권측이 KBS 사장은 자신들의 뜻대로 밀어붙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새 방송위원장 선임에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野 “공정성 훼손” 철회 촉구
한나라당 박종희(朴鍾熙) 대변인은 22일 “KBS이사회가 대선 당시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언론고문 출신인 서동구(徐東九)씨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 제청키로 결정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대통령의 측근이 사장에 임명된다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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