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을 조사해온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은 25일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G컨설팅업체 이사 김모씨가 국정상황실에 근무하거나 이광재(李光宰) 국정상황실장의 측근인 것처럼 행세한 것으로 판단되는 만큼 공무원자격사칭죄 등 범죄 성립의 소지가 있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 사칭 의도 등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의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사건 개요=문재인(文在寅)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발표에 따르면 김씨는 17일 K공기업 이사 J씨와 접촉해 “국정상황실에서 요구하는 것”이라며 “공기업 현황과 개혁과제를 내 e메일로 보내달라”고 해 자료를 받았다. 그는 또 J씨를 통해 관련 공기업인 S공기업 이사장 B씨에게도 같은 요구를 했고, 그 과정에서 J씨는 역시 청와대쪽의 요청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조사결과 김씨가 일하는 컨설팅업체는 청와대 인사보좌관실에 근무하는 김모 행정관의 대학 1년 선배가 경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B씨는 김씨에게 e메일로 자료를 보냈으나 김씨가 “자료가 부실하니 다시 보내라”고 요구했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B씨가 청와대에 김씨의 근무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덜미가 잡혔다.
▽의문점=민정수석실은 20일 조사에 착수해 김씨로부터 “보고서를 제출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청와대 ‘사칭’의 목적과 자료의 용도에 대해서는 김씨가 횡설수설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문 수석은 “청와대 직원들에게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사보좌관실 김 행정관이 이달 초 대학 선배인 C씨로부터 ‘경제부문 활성화를 위한 인사방향’이란 보고서를 전달받았고, ‘앞으로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보내달라’고 한 사실이 있다고 스스로 알려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기업 임원들이 제출한 e메일 보고서는 김 행정관은 물론 청와대의 어느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않았다는 게 문 수석의 설명이다.
따라서 왜 김씨가 공기업 임원들을 상대로 보고서를 받았는지, 배후가 있다면 누구인지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김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인사를 앞두고 인사파일 축적 차원에서 자신의 선배가 경영하는 G컨설팅 측에 용역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문 수석은 이와 관련, “G컨설팅 업체가 공기업의 자료를 이용해 자신들의 의견서로 만들어 김 행정관에게 건네려 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면서도 “강제적인 조사권이 없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수사결과 김 행정관의 직무상 잘못이 드러나면 징계 등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 사칭사건 빈발=청와대는 이 사건 외에 23일 저녁 모 은행장 집에 안봉모(安峯模) 국정기록비서관을 사칭해 대기발령 중인 직원을 임원으로 선임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이 있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11일에는 부산 C병원의 영업이사가 부산 항운노조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 수석 내정자를 사칭하면서 노조원의 건강진단을 C병원에서 받게 해달라고 요구했다가 적발됐다. 22일에는 참깨 수입업자가 부산세관장에게 이호철(李鎬喆) 민정1비서관을 사칭해 부당통관을 하려다가 들통이 나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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