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단을 초청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허혁필 부회장은 21일 환영만찬에서 “노무현 정권에 대해 실망했다. 여러분을 여기 들이는 것(입북)도 우리로서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대표단이 들어본 가장 ‘강경한’ 환영사였다.
안내원들도 남한정세에 비상한 관심을 표시했다. 한 안내원은 “이라크전쟁 때문에 인천공항에 동요는 없었느냐”고 물었다. 다른 안내원은 “남측 당국이 순순히 방북을 허용했느냐”고 물었다.
21일 오후 대동강변에 있는 주체사상탑 아래 광장에서는 여성들이 군복을 입고 행진 연습 등을 하고 있었다. 안내원은 “남측의 민방위 훈련과 같은 적위대 훈련”이라고 설명했다.
대표단 일부는 22일 밤 실시된 등화관제 훈련 현장을 목격했다. 이석재 다큐코리아 PD(35)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숙소인 양각도호텔 29층 18호실에 도착한 것은 오후 8시40분.
방안 공기가 탁하다는 생각에 대동강 이북 평양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창문을 여는 순간 사이렌이 울리며 온 도시의 불이 꺼졌다.
외국인들이 머무는 고려호텔만이 외롭게 불빛을 내고 있었다. 이 PD는 호텔 카운터에 전화를 걸었다.
“방공훈련입니까? 실제상황은 아니죠?”(이 PD)
“방항공훈련이라고 합니다. 연습이니 안심하십시오.”(호텔 직원)
사이렌은 10분쯤 뒤 멈췄다. 다른 대표단 일부도 깜깜한 평양 시내를 목격했다.
노동신문은 22일자부터 이라크전쟁 사실을 주민들에게 보도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마주친 주민들의 얼굴에서 크게 동요하는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지난해 10월 북한 핵문제가 시작된 이후 반미 구호와 그림 4, 5개가 평양시 거리 이곳저곳에 설치됐다. ‘미국’ 또는 ‘미제’라는 단어는 모두 검은색을 사용했다.
안내원들은 “우리가 핵을 가지고 있다고 시인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미국이 말의 앞뒤를 잘라 날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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