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족벌언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취임 이후 처음. 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언론정책에 관해 자주 언급했지만 ‘족벌언론’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았다. 그만큼 이날 발언은 격앙된 감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TV를 통해 여과 없이 전해진 그의 ‘적대적’ 언론 관련 발언은 언론종사자와 언론학자들을 놀라게 했다. 언론학자들은 특히 언론사의 소유와 언론의 자유는 별개의 문제이며 신문은 엄연한 사기업으로 경영이 부실하면 권력기관에 맞서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등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현대사에서 수시로 소유주가 바뀌거나 주인 없이 표류한 언론의 ‘기회주의적 행태’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주류언론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이 이들에 의해 탄압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반사이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박천일(朴天一) 숙명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사기업인 신문사는 탄탄한 경영을 통해 자본력을 확보해야만 권력에 대한 비판 견제의 기능을 할 수 있다”며 “자본의 독립에 기반한 취재력이 뒷받침될 때 분석적이고 심층적인 ‘기사의 질’을 담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재천(劉載天)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특정인의 소유를 비난하는 것은 언론 자유의 첫째 조건인 ‘발행의 자유’ 자체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물림도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면 문제될 게 없다”며 “대물림 여부와 상관없이 소유주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언론을 경영하면 그것이 곧 바른 언론인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권위지의 경우 ‘좋은 사주가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편집인을 통해 훌륭한 언론을 만든다’는 전통이 확립돼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해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국의 권위지들은 4, 5대에 걸친 가족 경영을 통해 권력과 대척점에 서서 권력을 견제 감시해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들이 ‘재정적 독립’을 강조하는 것도 권력기관과 광고주 등의 외압으로부터 신문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
1896년 미 테네시주 출신 언론인 아돌프 옥스가 뉴욕 타임스를 인수할 당시 뉴욕 타임스는 상업적 경쟁에서 패배해 부도 직전의 상태였다. 그러나 옥스의 사위인 아서 헤이스 설즈버거가 1935년 사장 겸 발행인으로 취임하면서 정론지를 표방,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리잡았다.
워싱턴 포스트도 마찬가지. 1933년 경매를 통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한 유진 마이어와 사위 필 그레이엄 등을 거치면서 권위지의 명성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902년 사업가인 클레어런스 배론이 인수한 후 사위 휴 뱅크로프트의 후손들이 소유하고 있다. 특히 1941년 언론인 출신 버나드 킬고어가 사장 겸 발행인에 오르며 미국의 대표적 보수언론으로 자리잡았다.
허행량(許倖亮) 세종대 매체경제학 교수는 최근 경제 전문잡지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제기되면서 성공적인 언론 그룹 모델 중 하나로 평가받는 ‘빅 보스(Big Boss) 모델’을 들어 ‘강력한 주인(主人)이 있는 언론’이 ‘주인 없는 언론’에 비해 자신을 지켜내는 힘이 강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빅보스’ 모델에 대해 “매일 새 상품을 내놓아야 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테드 터너, 마이클 아이스너와 같이 강력한 경영자들이 빠르게 의사 결정을 한 언론 그룹만이 살아남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유형화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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