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에 인사태풍…舊낙하산 자리에 新낙하산?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40분


《청와대가 400여개 공기업과 유관기관 등 정부 산하단체의 경영실태와 인사시스템 개선방안을 보고하라고 각 부처에 지시하면서 조만간 공기업 경영진 ‘물갈이’가 구체화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재 공기업 고위임원 가운데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기용된 전문성이 부족한 여권 주변인사 등 자질이 떨어지는 인사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일부 경영진의 교체를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술렁이는 공기업들▼

하지만 공기업 임원 개편이 만약 ‘개혁’이란 명분 아래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논공행상 차원에서 이뤄진다면 과거 공기업 경영을 갉아먹은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설사 일부 공기업 경영진을 바꾸더라도 최소한의 전문적 실력을 갖춘 인사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기업 낙하산 인사 실태〓현재 공기업 사장, 이사장이나 감사 가운데는 정치적 이유로 발탁된 사람이 많다.

조홍규 한국관광공사 사장, 김진배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 김명규 한국가스공사 사장, 유필우 대한석탄공사 사장, 권해옥 대한주택공사 사장, 정동윤 지역난방공사 사장 등이 여권 정치인 출신이다.

또 김진호 한국토지공사 사장, 박춘택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이억수 한국석유공사 사장, 오점록 한국도로공사 사장 등은 군 출신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해당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또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증권거래소 KOTRA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최고경영진은 경제관료 출신들로 채워져 있다. 관료출신 공기업 사장은 전문성과 능력 차원에서 차이가 있지만 ‘낙하산 인사’ 시비도 적지 않다.

이런저런 낙하산 인사 과정에서는 ‘자리 이동’에 따른 무리도 따른다. 최근 증권전산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된 허노중 증권전산사장은 나흘만에 코스닥위원장으로 옮겨가기도 했다.

현재 기획예산처가 ‘관리’하는 13개 정부투자기관과 6개 출자기관 등 모두 19개 공기업 최고경영진을 분석해보면 △관료 출신 7명 △정치인 출신 6명 △군 출신 4명 △내부 승진 2명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인사가 정치적 이유로 공기업 경영진에 선임될 경우 경영효율성이 낮은 경우가 많다. 또 선임과정에서 노조가 반발할 경우 이를 무마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들어줘 경영혁신이 어려워지는 일도 적지 않다.

▽해당 공기업 반발 움직임〓대표적 공기업 가운데 하나인 한국전력은 경제관료 출신으로 지난 대선때 노무현 후보 캠프에 있던 H씨가 새로 사장으로 옮겨올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면서 술렁거리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의 한 관계자는 “현 사장의 임기가 2년 이상 남았고 큰 실수가 없었는데 개혁성이란 이름으로 낙하산인사가 이뤄지면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건교부 출신 관료들의 기용설이 나도는 주택공사 도로공사 등에서도 거부감이 적지 않다.

주공 관계자는 “주공이 62년 창사한 이래 내부승진을 통해 사장에 오른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며 “이는 공기업의 전문성과 공공성을 무시한 처사였다”고 지적했다.

특히 민주당에서 당직자 등을 대거 공기업에 보내겠다는 데 대해서는 한결같이 부정적 반응이다. 한 공기업 임원은 “전윤철 전 경제부총리가 기획예산처 장관 시절 ‘대차대조표도 모르는 사람을 공기업 감사에 앉혀놓고 무슨 공기업 개혁이냐’고 말했던 적이 있다”며 정치권 인사들의 ‘입성(入城)’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주요 공기업 및 정부유관기관 임원현황 (자료:기획예산처, 각 기관)
기관 및 직책이름임기만료일과거 주요 경력
한국조폐공사 사장박원출2005년 8월국무조정실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
한국전력공사 사장강동석2005년 5월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대한석탄공사 사장유필우2005년 9월민주당 인천시지부 정책위원장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박춘택2004년 8월공군참모총장
한국석유공사 사장이억수2005년 8월공군참모총장
KOTRA 사장오영교2004년 4월산업자원부 차관
한국도로공사 사장오점록2004년 6월병무청장
대한주택공사 사장권해옥2004년 5월자민련 부총재
한국수자원공사 사장고석구2004년 5월수자원공사 부사장
한국토지공사 사장김진호2004년 10월합동참모본부 의장
농업기반공사 사장배희준2006년 1월농업기반공사 이사
농수산물유통공사 사장김진배2004년 10월민주당 국회의원
한국관광공사 사장조홍규2003년 5월민주당 국회의원
한국가스공사 사장김명규2003년 9월민주당 국회의원
지역난방공사 사장정동윤2005년 6월민주당 선거관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감정원 원장강석천2004년 12월국무조정실 수질개선기획단 부단장
대한주택보증 사장권오창2005년 6월건설교통부 기획관리실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조우현2005년 주총건설교통부 차관
한국공항공사 사장윤웅섭2005년 주총서울지방경찰청장
증권거래소 이사장강영주2005년 4월국세심판소 소장
코스닥위원회 위원장허노중2006년 3월국세심판소 심판관
증권예탁원 사장노훈건2004년 4월재정경제원 국장
신용보증기금 이사장배영식2005년 6월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박봉수2005년 5월재정경제원 1급
예금보험공사 사장이인원2004년 12월국세심판소 심판관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연원영2005년 1월금융감독위원회 상임위원

▼민주당 분위기▼

“청와대와 당의 온도차가 꽤 크다.”

민주당 인사위원회의 한 위원은 4일 당내 인사의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 임원 진출 규모에 대해 “당 쪽은 크게 들떠 있지만, 청와대는 당에서 기대하는 만큼 배려할 것 같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 정찬용(鄭燦龍) 대통령인사보좌관이 3일 400여개 정부 산하기관 기관장 인사에 대해 “임기는 존중하겠지만 보장하지는 않겠다”고 발언하자 산하단체 요직을 탐내온 당내 인사들은 내심 고무된 분위기다. 당초 예상보다 정부 산하기관 임원 인사의 규모도 커지고 시기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에서다.

현재 당 인사위에 접수된 산하기관 진출 희망자는 600여명. 인사위는 이들 중 부적격자를 가려내고 직급별 분야별로 분류해 놓은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의 기대가 어느 정도나 반영될지는 미지수라는 게 당 인사위원들의 고백이다.

청와대측은 “장관 인선 때와 마찬가지로 산하단체장 인선도 추천과 토론 검증 등 다단계 절차를 밟도록 하겠다”고 밝혀 당내 인사를 ‘특별 배려’할 의사가 없음을 내비치고 있다.

김태랑(金太郞) 인사위원장이 최근 “당은 더 이상 별 직업도 없이 왔다갔다하는 사람들의 집합체가 아니다”며 당내 인사들도 전문성과 개혁성을 갖추고 있다고 거듭 강조하는 것도 청와대측의 이런 기류를 감안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은 최근 청와대로부터 한국관광공사사장, 환경관리공단이사장, 보훈복지의료재단이사장, 한국가스공사 감사 후보자를 3배수로 추천하라는 요청을 받고 7일 인사위 회의를 열어 선정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사장에는 박용호(朴容琥) 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보훈복지의료재단이사장에는 이모 전 서울시의회의장, 강원지역 김모 지구당위원장 등이 뛰고 있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벌써부터 물밑 경쟁이 치열한 상태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각 부처의 장관 정책보좌관 자리를 희망하는 당직자 30여명의 명단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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