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평화주의자들은 전쟁 자체를 부정하면서 반전(反戰) 평화 운동을 전개한다. 극단적인 경우 이들은 무기 등 모든 전쟁 수단의 폐기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데 인류역사는 평화주의자들의 이상과는 달리 ‘평화의 역사’가 아니라 흔히 ‘전쟁의 역사’로 불린다. 아마도 평화주의적 이상이 인류평화의 열쇠가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평화주의 덧입은 안보해이 경계 ▼
최근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들끓은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평화 시위를 목격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반전 주장은 이라크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고 일방적인 ‘침략전쟁’이기 때문에 동참해서는 안 되며, 이라크 다음에는 북한을 공격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에 반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문제는 이 같은 반전 평화 사상이 과연 지금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주요 국제안보 위협 요인인 테러, 대량살상무기, 북한 핵 등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라크전쟁은 바로 그러한 국제안보 위협 요인의 제거 문제와 직결되는 전쟁이다. 오늘날 미국의 국제적 역할과 역량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나 국제기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의 성패는 우리 안보와도 직결된다. 미국의 실패는 국제질서의 혼미와 함께 북핵 위기를 비롯한 한반도 위기관리 기능의 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
한편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반핵 반전 운동 그 자체보다 그와 관련하여 표출되고 있는 반미성향의 국제상황 인식과 평화주의로 덧입혀진 안일한 안보의식이 문제다. 앞으로 주요 국가안보 현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공감대 형성이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안보 현실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정부는 우선 이라크 파병의 ‘명분’과 ‘실리’ 모두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 측면에서 선택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식의 설명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이라크 파병은 한마디로 우리 자신의 안보를 위한 것이며, 우리가 살기 위한 것이다. 동맹국으로서의 의리라든가 전후 복구사업 참여 등은 그 다음 문제다. 이 밖에 다른 명분이 더 필요한가.
둘째, 정부 당국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상황인식과 전략적 판단을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입장 정립에도 적용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북한의 핵 보유는 어떤 경우에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기본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생존에 관한 입장이며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북한의 핵 보유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한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정부는 또한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답변이 없이는 한미 공조도 다자간 협력도 이루어질 수가 없고, 또 우리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기대하거나 신뢰할 나라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주도적 역할은 ‘북한 핵 보유 불용’을 공동 목표로 하는 한미 공조관계와 국제공조체제를 이끌어내는 역할이어야 할 것이다.
▼한미공조 국제공조 주도적 역할을 ▼
최근 이라크전쟁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양상을 띠는 가운데 한미 양국 정상은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공동노력 의지를 거듭 표명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조지 W 부시 정부의 특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또 지난 반세기 동안의 남북한 관계는 ‘과정’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사실을 말해 주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박용옥 객원논설위원·전 국방부 차관 yongok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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