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紙 공동배달에 기금 지원 물의]문화부vs 전문가들

  • 입력 2003년 4월 16일 18시 57분


《이창동(李滄東) 문화관광부 장관이 15일 국회 문화관광위 답변에서 신문공동배달제(공배제)에 대한 문화산업진흥기금 지원 방침을 천명한 것은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언론정책의 구체적인 ‘제도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공배제는 특정 신문사들이 별도의 회사를 공동 설립해 신문을 배달하는 일종의 공동유통망으로 현재 한겨레 경향 국민 세계 문화일보 등 5개 신문사가 경기 과천시에서만 시범 시행하고 있다.

이들 신문사는 전국적인 배달망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상호 유통비 절감 차원에서 공배제에 참여하고 있으나 발행부수가 200만부가 넘는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은 “시장경쟁 원리에 어긋난다”며 참여하지 않고 있다.

문화부가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공배제에 문화산업진흥기금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사기업인 신문사의 영업 행위에 정부기금을 지원함으로써 ‘특정 신문 키우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공배제에 참여하지 않는 동아 조선일보 등 비판 신문들에 대한 규제의 하나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문화산업진흥기금은 1999년 이후 매년 300억∼500억원씩 국고에서 출연해 마련한 기금으로 2004년까지 3000여억원이 조성될 예정. 이는 출판 음반 게임 등 문화산업 전반에 대해 지원하는 ‘융자 중심’의 기금으로 현재까지 파주출판단지나 문화상품 개발에 지원되고 있다.

문화부는 “신문산업도 문화산업의 하나로 유통구조 개선에 대해 문화산업진흥기금의 융자 지원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문화부의 논리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김우룡(金寓龍·언론학) 교수는 “문화산업진흥기금은 당초 취지가 영화 비디오 게임부문 등을 지원하는 기금으로 특정 신문의 영업행위에 지원된다면 기금이 행정편의주의에 유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구가톨릭대 최경진 (崔京軫·언론학) 교수는 “공배제의 당초 취지는 신문사들의 생존을 위한 자구노력이므로 운영도 신문사가 해야 한다”며 “일부 신문사만 해당되는 현 공배제에 정부가 자금을 융자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공배제에 대한 문화부의 지원 방침이 형평성 논란을 빚는 것은 공배제가 신문업계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특정 신문’들의 자구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공배제를 정부기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사기업인 신문사의 유통망 구축에 국민의 세금을 사용함으로써 자유 시장 질서를 무너뜨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마디로 ‘시장경쟁에서 뒤지는 신문사들의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일에 세금을 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 정진석(鄭晋錫·신문방송학) 교수는 “공배제에 대해 신문업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므로 정부기금을 지원하는 것은 언론 경영에 정부가 간여한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배제가 결과적으로 독자들의 신문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견해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김우룡 교수는 “신문보급시장의 균형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공배제 지원을 통해 안 팔리는 신문을 사실상 권유함으로써 독자의 선택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며 “신문시장은 정부의 간섭이나 지원이 아닌 독자들의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현 공배제는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에서 실시 중인 ‘신문공동판매’와 달리 배달만 공동으로 하고 판촉이나 수금 등은 각 신문사가 따로 하는 시스템. 따라서 이 제도의 도입으로 신문사간 과열 판촉경쟁이 줄어든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허 엽기자 heo@donga.com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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