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청남대 개방 기념행사를 앞두고 노 대통령의 초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여야 대표들은 △북한 핵 문제 △언론 문제 △대북 송금 사건 특검법 개정 문제 등 현안에 대해 자유스럽게 의견을 나눴다.
그동안 여야간 협상이 지지부진했던 특검법 개정 문제는 이날 완벽한 합의를 보지 못했다. 이날 회동에서 북한 관련 인사 및 계좌의 익명성을 보장하고, 수사기밀 유출시 처벌을 강화한다는 데 쉽게 합의가 이뤄졌으나 이는 그간의 협상에서 어느 정도 의견차가 좁혀졌던 사안이었다.
수사기간 축소 문제는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축소 불가’ 의견을 받아들였다.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수사 기간을 추가로 연장할 경우 대통령의 승인을 받게 돼 있는 만큼 대통령이 승인하지 않으면 된다. 굳이 축소할 이유가 없다”고 했고, 노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
특검의 명칭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빼는 문제는 이견이 팽팽했다. 노 대통령은 “명칭에서 예단을 하는 것은 안 된다. 박 대행이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결단을 내려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고,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도 “옷로비나 조폐공사사건 명칭과는 달리 이번 건은 결정된 것이 아니다. 부작용이 많다”며 거들었다. 그러나 박 대행은 “명칭 문제는 재론하지 않겠다. 지금대로 가는 게 좋겠다”고 버티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3자회담에 우리가 참여하지 못한 데 대해 박 대행은 “우리는 유엔 인권 결의 표결에 참여하지 않는 등 북한을 생각하는데, 북한은 왜 우리를 배제하느냐.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 3자회담에 우리가 빠지게 되면서 국론분열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통령이 직접 토론에 나서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일리 있는 지적이고, 겸허히 수용한다. 앞으로 우리 국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다하겠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럴 (직접 토론에 나설)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
언론 문제를 놓고도 논란을 벌였다. 박 대행은 언론통폐합이나 언론사 세무조사를 예로 들면서 “과거 정권이 언론을 장악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며 말을 꺼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상황인식은 같다. 하지만 언론이 정권의 탄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언론과 정권이 각기 자기 갈 길을 가야 하는데 언론이 정권 길들이기를 하려는 시도가 있다”고 받아넘겼다.
박 대행은 “언론이 정권을 길들이는 것인지, 정권이 언론을 길들이는 것인지 그러한 인식 차이가 있다”고 재론하자, 노 대통령은 “그 문제는 다음에 정리하자”며 논란을 매듭지었다.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盧대통령 “허리아파 스윙을 반만 하겠다”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는 청남대에서 골프 라운딩에 이어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인 만찬을 했다.
이날 오후 3시 청남대에 도착한 노 대통령과 민주당 정대철(鄭大哲) 대표,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 이원종(李元鐘) 충북지사는 청남대 안에 있는 간이골프장에서 2시간 동안 9홀을 돌았다.
노 대통령은 라운딩에 앞서 정 대표가 “(골프친 지) 얼마만이냐”고 묻자 “꼭 1년 정도 됐다. 헬기 타고 내려오다 보니, 이렇게 좋은 줄 알았으면…”이라며 청남대 개방에 대한 ‘아쉬움’을 농담조로 얘기해 웃음을 자아냈다.
가장 골프 실력이 나은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대표권한대행은 “골프는 치지 않겠다”며 오후 5시경 청남대에 따로 도착해 만찬에만 참석했다.
전동카트를 직접 운전해 클럽하우스로 이동한 노 대통령은 의료진과 비서진이 “드라이버를 쓰면 안 될 것 같다”고 걱정하자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뒤 오늘 처음 시운전을 하는 셈이다. 허리가 아파서 스윙을 조심하라는데 스윙을 반만 하겠다”고 말했다.
9홀을 돈 골프 점수는 김 총재와 이 지사가 각각 45타였고 정 대표가 50타, 노 대통령은 53타였다.
라운딩이 끝난 뒤 노 대통령이 운전하는 전동카트를 타고 본관 앞까지 온 박 대행은 “운전을 잘하시네. 카트 운전하시는 것만큼 국정을 운영해주십시오”라고 ‘뼈있는 조크’를 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과 3당 대표는 오후 6시부터 청남대 본관 앞뜰에 마련된 원탁 테이블에서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국회 농림수산위에서 박 대행의 질의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다고 회고하면서 “답변하는데 박 대행에게 판판이 당했다”면서 웃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만찬회동을 마친 뒤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와 함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청남대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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