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이 18일 새벽 청남대에서 직접 쓴 이 편지는 공무원 10만명과 청와대 홈페이지 회원 20만명에게 e메일로 발송됐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도 떠 있다. 이 편지는 국정에 임하는 그의 마음을 읽게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편지는 서두에 참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청남대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이유를 ‘그것은 저 스스로 사사로운 노무현을 버리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어 ‘제가 생각하는 개혁의 방법 또한 일부에서 걱정하시는 것처럼 대립적이거나 과격하지 않습니다. 호시우행(虎視牛行)! 제가 생각하는 개혁의 방법은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며 ‘제가 가진 소신이 자신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으로 저를 흔드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저는 지금 누구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누구 편도 아닙니다.…소처럼 묵묵히 저의 길을 가면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저를 이해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이어갔다.
그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만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아무리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못난 저를 이 시대의 희망으로 보고 있는 양식있는 국민과 함께 저를 흔드는 사람들까지 가슴에 안고 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나아갈 것입니다’라고 편지를 끝맺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잠들어 있을 새벽 5시에 대통령이 잠을 잊은 채 써내려간 편지의 한 구절 한 구절에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고 자신의 의지를 새삼 가다듬는 그의 심정이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기자로서 20년 이상 기사와 칼럼 등을 써 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글은 결코 가식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진심이 그대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글을 읽고 그의 진솔한 마음이 느껴지면 질수록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째서 일까. 그는 편지에서 ‘막연한 불안감으로 저를 흔드는 일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라고 썼다. 이는 실제는 어떠했건 적어도 노 대통령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말 그럴까. 대통령이 얘기하는 ‘흔드는 일부 사람들’은 비판적인 언론이나 보수정당 그리고 보수성향의 시민단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새 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해 나름대로 비판적인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것을 왜 ‘흔든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에 참석했던 한 공식모임에서 ‘제발 불안하지 않게 해달라’는 건의를 받고 ‘(실제는 그렇지 않은데 다들 그렇게 인식하니)저도 답답합니다’ 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지금 필자는 말하고 싶다. ‘대통령님 정말 답답합니다’라고.
신문에 실리는 사설과 학자 문필가 전문가 경제인 등의 숱한 칼럼이 모두 대통령을 흔들기 위한 글인가. 그 글들은 대체로 대통령이 어느 한 쪽 시각에만 쏠리지 말고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초등학생이 읽어도 그 취지와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한마디로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충정어린 비판이며 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진정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의 건의였다. 그러한 내용들을 단지 흔들기로만 인식하고 있다는 그 자체가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 자신이 말했듯이 어느 한 쪽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 닫힌 가슴으로는 결코 모두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없고 모두의 신뢰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며 그것은 나라의 불행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모든 이의 ‘우리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정동우 사회1부장 fo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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