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재처리시설의 봉인을 제거하고 지난해 12월27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을 추방한 뒤 이미 폐연료봉 재처리시설인 방사화학실험실을 가동하기 위한 준비를 상당 수준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아직은 재처리시설을 가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IAEA 사찰관을 추방해 직접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재처리시설을 가동할 경우 많은 전력이 들어가고 이에 따라 상당한 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인공위성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데 아직은 그런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는 게 정부 및 미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폐핵연료봉 8000여개 재처리가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은 중국 베이징(北京) 3자회담이 결렬된다면 곧바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즉 자신들을 지나치게 압박하지 말라는 사전 경고인 셈이다.
북한은 또 이번 회담을 예비적 회담으로 규정하고 한국 일본의 참여를 거론하겠다는 미국측 입장에 대해 거부반응을 나타낸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이 3자회담에 즈음해 남북장관급회담을 개최하자고 제의한 것과 관련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제는 북한의 재처리 관련 언급이 단지 엄포만이 아니라 실제 재처리에 돌입했거나 조만간 시작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8000여개의 폐연료봉(50t)을 재처리할 경우 핵무기 3∼6개를 만들 수 있는 재료인 플루토늄 28∼35㎏을 3, 4개월 안에 추출해 낼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분석이다.
어렵게 대화 국면을 만들었던 미국의 비둘기파들조차 북한 태도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재처리의 파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북한의 재처리시설 가동을 넘어서는 안 될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하고 북한의 재처리 시도를 막아 왔다.
결국 북한의 핵 재처리 시도 여부가 3자회담뿐 아니라 앞으로 북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 틀림없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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